[차상엽의 시선] 홍명보 체제, 많은 것을 바라진 말자

입력 2013-06-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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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표현이지만 축구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다. 잘하면 영웅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곧바로 역적이 된다.

이제 이 독이 든 성배의 주인은 홍명보 감독이다. 전임 최강희 감독은 ‘한국축구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는 큰 기대감 속에 닻을 올렸지만 시작부터 끝이 분명했던 경우다. 브라질월드컵 본선행 여부에 관계없이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마치면 물러날 것임을 밝힌 시한부 감독이었다.

그나마 최 감독의 퇴장길은 씁쓸했다. 전북 현대 감독으로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최종예선 막판 보여준 이른바 ‘뻥축구’는 클럽에서 이룬 성과까지 깎아버릴 정도였다.

이번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지켜보는 팬들의 분위기는 최 전 감독이 부임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적임자”, “당연한 선택”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마치 지금까지 맡았던 감독들은 적임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일 정도다.

조광래 전 감독이 경질된 이후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고 이제 그 지휘봉은 홍 감독에게 넘어왔다. 홍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 신망이 두텁고 협회와의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역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4번이나 밟았을 정도로 누구보다 화려한 현역 생활을 보냈고 지도자로서도 서서히 역량을 넓혀가고 있다. 시간적으로 촉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월드컵을 통해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성공한 축구인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월드컵까지의 준비기간이 짧아 제대로 색깔을 내기 힘들 것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홍 감독이 선택한 몫이다. 팬들이 우려하는 것을 홍 감독 역시 똑같이 고민했을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면 감독직을 고사했으면 그만이다. 최 전 감독이 본선에서는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 것 역시 수용했던 협회다.

물론 홍 감독이 당장 팀을 맡았다 해서 당장 월드컵 16강, 8강 혹은 그 이상의 성적이 나올 것으로 확신하는 팬들은 거의 없다. 최종예선 과정에서 대표팀은 분명 납득할 수 없는 플레이를 했고 무기력한 경기력이 이어졌다. 패배에도 납득할 수 있는 패배가 분명히 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감독 본연의 역할은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홍명보 감독이 당장 브라질에서 어떤 성적표를 낼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인다면 승패에 관계 없이 그것만으로도 성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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