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 교수
먼저 각국이 재정위기 때문에 세수 확보 차원에서 역외 세금 탈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복잡한 구조에 의한 인위적 역외 절세방안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국내 세원은 더는 추가적 세원을 확보할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금융정보의 불투명성, 그리고 비밀주의 등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역외 세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외 과세권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미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 중 하나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존중받아야 할 기업임에도, 최근 조세피난처 등을 통한 역외 탈루라는 관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세법에 의하면 미국과 긴밀하게 연결된 소득(closely connected income)은 미국 과세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것인지는 다소 불명확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으로서는 기존의 해석에 의한 과세권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강조하고, 정치권에서는 좀더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 범위를 재설정해 과세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간 역외 세원의 경우는 각국의 과세권이 상호 충돌돼 각국의 과세권 행사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특히 강대국 상호 간의 과세권이 충돌하면 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상당히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를 맞이해 모두가 역외 세원을 확보하고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조세피난처는 모든 국가의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귀속된 매출에 대해 각국이 자국의 과세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자금을 제거하는 명분도 얻고 동시에 부족한 세원 확보라는 실리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각국은 그간 비공개되고 불투명한 역외 금융정보 등을 국가 간 공조 노력을 통해 역외 금융정보를 투명하게 할 공동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과세 정보공조 협정을 통해 자국의 과세권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역외 세원에 대한 과세권 행사의 합리적 방안을 자연스럽게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역외 과세에서 주로 문제가 된 것은 실제 사업을 하는 국가와 과세권을 행사하는 국가가 다른 데서 발생했다. 예를 들어 실질적으로 매출은 A국가에서 이뤄지나, 매출대금은 이를 B국가 회사가 받도록 사업구조를 인위적으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은 A국가로부터 엄청난 영업이득을 취하고도 A국가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B국가 회사에서는 극소수 직원이 판매활동을 하고, 실제로는 A국가 회사에서 엄청난 수의 직원이 판촉활동을 한다. 이 경우 A국가 내에서 실제 사업활동이 이뤄지나, 법리적으로는 판매가 아닌 판촉활동만 할 뿐이어서 A국가가 해당 기업에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제 이런 모순은 시정돼야 한다. 즉 인위적 구조에 의한 교묘하고 기술적인 세금탈루에 대해서는 과세권의 실효성과 합리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형식적 논리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과 실질적 측면에서 그 실체를 파악해 과세권을 배분하고 합리적으로 이를 행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범세계적 시각의 변화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국제적 분위기에 힘입어 다른 국가와의 공조 등을 통해 역외 금융정보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과세정책의 실효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