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블룸버그의 데이터마이닝 사기

입력 2013-05-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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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최근 며칠. 미국에서도 월가가 발칵 뒤집히는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적인 금융정보 단말기로 잘 알려진 블룸버그통신의 기자들이 자사 터미널에 접속해 정부 당국자와 트레이더, 금융관계자 등 주요 고객의 막대한 정보를 열람해 취재에 활용해온 사실이 들통이 났다.

고객 정보보호 의무를 저버린 기업윤리는 물론 고객들을 장기간에 걸쳐 철저히 기만했다는 점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고객들은 그동안 블룸버그가 제공하는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거액을 주고 단말기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사실은 고객의 정보를 캐내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는 ‘데이터 마이닝’ 수법으로 고객을 유인해 온 것. 고객들이 이같은 블룸버그의 데이터 마이닝에 중독된 것은 물론이다.

블룸버그 측은 “기자들이 열람한 것은 전체 고객 정보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전 세계에 31만대 이상의 단말기를 판매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이 수법이 장기간에 걸쳐 보도 부문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져왔다는 것은 단말기 영업에도 상당한 도움이 돼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편법이 경쟁 기업의 표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블룸버그의 데이터 마이닝 사기는 주요 일간지가 아닌 뉴욕의 타블로이드지인 뉴욕포스트가 터뜨렸다. 뉴욕포스트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가십 전문매체다.

그동안 머독은 뉴욕타임스에, 마이클 블룸버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각각 군침을 삼켜왔다. 둘이 각 매체를 인수한다면 강력한 라이벌 관계가 성립된다. 머독이 블룸버그의 과점 비결을 집요하게 파헤쳤을 것이라는 추측도 이래서 나온다.

또 다른 라이벌인 톰슨로이터도 블룸버그의 빈틈을 호시탐탐 노렸을 것이다. 톰슨로이터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성명을 통해 “우리 기자는 노출된 것을 제외하고 자사 고객에 관한 정보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톰슨로이터는 2008년 4월 로이터그룹과 톰슨파이낸셜이 합병하면서 금융정보 단말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합병 전까지는 채권 트레이더 출신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세운 블룸버그에 밀려 맥을 못췄다. 블룸버그는 단말기 이용자끼리 사용할 수 있는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정보 단말기 시장의 33%까지 장악했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 이번 스캔들로 블룸버그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단말기 대량 반납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블룸버그에 섣불리 제재를 가하기엔 단말기에 대한 고객들의 의존도가 너무 커졌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단말기는 금융정책은 물론 시장까지 움직일 수 있는 방대한 정보력이 무기. 현재로서 엎질러진 물은 절대 갑(甲)이 되어 버린 블룸버그의 자발적인 쇄신에 맡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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