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적막한 밤…달빛이 빚은 연못 속의 궁

입력 2013-05-03 10:57수정 2013-05-0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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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정사를 논하고 때론 연회를 즐겼던, 학문과 예술의 전당 주합루가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인공 연못인 부용지에 투영되어 그 모습이 신비롭다.
요즘 '광클'을 해야만 겨우 표를 구할 수 있다는 창덕궁 달빛 기행을 다녀왔다.

무거운 밤공기가 내려앉은 창덕궁은 정말 고요했다. 청사초롱을 들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으며 고궁을 사색하는 재미도 새로웠다. 어둠 속 나지막한 목소리로 듣는 해설사의 고궁에 얽힌 숨겨진 야사(野史)들도 귀에 속속 들어왔다. 은은한 조명으로 단장한 창덕궁은 여백의 미를 강조한 한 편의 동양화를 보는듯 아름다웠다. 상을 당한 왕후들이 기거했던 낙선재 창호(窓戶) 흘러나오는 문살무늬, 부용지에 투영된 주합루의 위용도 밝은 햇살 아래서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약 1시간여의 고요하고 여유로운 산책을 마치고 연경당에서 국악공연을 감상했다.

아무도 없는 고궁을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서울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밤다운 밤, 어둡고 조용하고 적막한 밤 속 산책은 더욱 색다른 묘미였다. 사실 우리 생활에서 밤은 너무 밝고 시끄럽다. 누군가는 네팔 포카라에 올라 쏟아질 듯한 별이 가득한 깜깜한 밤하늘을 보고 울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온사인도 드문 파리의 밤을 걷다가 문득 밤은 참 고요하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무엇이든 빠른 것만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편하게 쉬어도 되는 밤까지도 우리는 너무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 점점 다가오는 도시의 불빛이 먼 과거에서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여행의 끝을 알리는 것 같았다. 단 2시간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서울의 밤은 부드러웠다.

▲인정전 앞문 뒤로 남산타워가 밝게 불을 밝히고 있다.

▲청사초롱을 든 한 여성이 창덕궁 낙선재 후원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육각형 누각 평원루를 지나 원형문을 빠져나 오고 있다.

▲시민들이 ‘창덕궁 달빛 기행’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창덕궁을 지키는 수문장.

▲인정전 앞마당에 품계석이 위엄있게 서 있다.

▲잔잔하게 울리는 대금 소리가 봄밤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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