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시간의 고뇌’ 황철주 “20년 키워온 회사 주식 팔 수 없었다”

입력 2013-03-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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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장 내정부터 사퇴까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96시간’은 어느 때보다 짧았다.

18일 오후 황철주 회장은 중기청장 내정직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5일 중기청 내정발표 이후 나흘 만이다. 황 회장이 첫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중기청장으로 내정되면서 업계에선 현실적인 정책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에 한 껏 고조됐던 만큼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이번 사태는 청와대의 허술한 인사 시스템과 황 회장의 다소 성급한 결정이 맞물리면서 벌어졌다.

황 회장이 청와대로부터 신원 검증 동의서 제출요청을 받은 시점은 내정자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4일 늦은 오후. 황 회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번 사퇴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던 ‘백지신탁’에 대해 전해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회장은 하루가 지난 15일 오후 2시 내정 통보를 받으며 백지신탁을 이유로 주식 처분을 해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기서 황 회장은 백지신탁이 중기청장직 수행기간 동안에만 주식을 맡기면 된다고 이해했고 결국 청와대와 내정자 간의 소통 부족이 사퇴로 이어지는 단초로 작용했다.

지난 2005년 국내에 도입된 백지신탁은 장관 등 1급 이상 고위 공직자(부처에 따라 4급 이상 해당)와 국회의원 등의 경우 재임 기간 동안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 등이 보유한 주식 합계가 3000만원 이상인 경우 1개월 안에 반드시 매각하거나 처리 전권을 신탁기관에 위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정안전부 산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업무와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주식은 매각 또는 백지신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이번 황 회장의 경우엔 적용되지 않았다.

황 회장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보유 주식은 25.4%로, 시가평가로 환산하면 700억원 규모다. 직원·투자자·주주 등 고려해야할 것들이 많은 것에 반해 1~2일이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황 회장이 현직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CEO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청장직을 제의한 청와대도 청장직을 수락한 황 회장 본인도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성 중시 인사를 지향한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운영시절 최대석 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과위원 사퇴를 시작으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에 이어 황 회장의 사퇴까지 9번째 ‘인사사고’를 범한 셈이다.

황 회장은 백지신탁에 대해 “(서로) 이해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청와대 측은 (내가) 백지신탁 의미를 알았다고 여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막상 업무를 챙기며 백지신탁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보니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고 너무 가혹했다”면서 “설령 회사를 정리하려고 해도 최소한 주식을 제대로 처분할 수 있는 방법과 충분한 시간은 주어져야 하는데 기업을 책임지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과 제도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업계에선 앞으로 ‘제2의 황철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구식의 법과 제도를 재정비 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원구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인을 공직에 앉힌다는 것은 좋은 발상이었고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의기가 강하게 반영된 결정이었으나 황 회장은 주주와 직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사퇴를 결심했다”며 “지금의 제도를 보완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기업인도 이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정 여성벤처협회장은“황 회장의 중기청장 내정으로 벤처업계는 물론 중소·중견기업계에서 거는 기대가 컸지만 법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황 회장의 사퇴로 이어졌다”며 “앞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을 위한 법 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황 회장의 사퇴로 차기 청장인선이 복잡해진 가운데 김순철 중소기업청 차장이 당분간 업무대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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