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교수는 선거에 출마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박 시장을 만나러 간다. 지난 대선 때인 186일 전에도 그랬다. 물론 언론에 보도된 두 사람의 회동 결과는 가히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원론적 얘기들뿐이었지만 이 만남이 갖는 상징성을 최대화하려 한다는 느낌이다.
아마 안 전 교수는 4·24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두고 민주통합당 후보의 출마를 저지해서 야권 후보의 수를 줄이는 효과를 생각했을 법하다. 즉 민주당 인사인 박 시장을 만나는 것 자체가 대선에서의 ‘양보’를 상기시키면서 민주당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계산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안철수 전 교수 지지자들은 이런 말을 하면 펄쩍 뛸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안 전 교수는 정치적 계산 없이 단지 정치개혁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여겨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는 안 전 교수는 그렇지 않다. 그의 언행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먼저 안 전 교수가 보선 출마를 선언하며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산 대신 수도권을 택한다”고 한 발언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논법대로라면 지역주의 타파를 부르짖으며 야당의 깃발 아래 부산에 출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에 기댄 인물이 돼버린다. 그리고 지난 총선 때 야당 타이틀로 자신의 고향 대구에서 출마했던 김부겸 전 의원이나 역시 새누리당 불모지인 광주에 출마했던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과 같은 인물들도 결국 지역주의에 의존했던 인물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의 용기를 칭찬할 뿐 아니라 언젠가는 이들의 뜻을 지역민들이 받아줄 것이라는 얘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안 전 교수의 이런 주장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엔 상당히 궁색해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안철수 전 교수는 2011년 9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 제가 만일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이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확장성을 반대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행위의 ‘좌표’라는 말인데, 그 좌표가 바뀌었는지 몰라도 노원병에 출마한 건 분명 이런 소신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노원병은 본래부터 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기에 굳이 본인이 출마하지 않아도 새누리당 인사의 당선이 힘든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당선됐던 19대 총선은 물론이고 지난 18대 총선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18대에서 노 전 의원은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3%포인트 차이로 패했지만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까지 합산하면 56%로, 야당 후보들이 당선자인 홍정욱 후보를 앞질렀다.
그래서 안 전 교수의 ‘좌표’가 바뀌지 않았다면 부산에 출마하는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다. 부산 영도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5선을 지냈을 만큼 새누리당이 유리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이번에는 새누리당 대선 캠프 총괄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전 의원이 출마해 더욱 견제할 필요성이 큰 지역이다. 이 때문에 안 전 교수가 솔직하게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수도권에 출마한다”고 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안철수 전 교수는 노원병 출마를 선택했지만 안 전 교수의 승리를 낙관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최근 여론조사만 보면 안 전 교수가 유리하지만 여론조사는 그 지역 주민 전체 중 표본을 추출하는 것이어서 재보선과 같이 투표율이 20% 안팎인 경우엔 들어맞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재보선은 조직이 강한 쪽이 유리한데 안철수 전 교수는 이 지역에 조직이 없다. 그래서 민주당 조직을 빌려야 할 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박원순 시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박 시장의 말이 민주당에 먹히지 않거나 민주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무소속 출마라도 하는 날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의 정도로서 때로 무소의 뿔처럼 가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말을 안 전 교수에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