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노인 '인생 2막']"저무는 삶 아니다" 좌절딛고 새 길 개척

입력 2013-02-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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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실패 등 경제력 잃으며 죽음 위기 겪기도

#지난 10일 오전 충남 홍성군 구항면. 포클레인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산 아래 척박한 자갈밭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인천에 사는 이모(68)씨가 부탁한 일이었다. 이씨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땅을 산 것은 지난해 11월. 이씨는 일주일 전에 본인 소유 1663㎡(550평)의 밭을 개간해 줄 것을 업자에게 맡긴 터였다.

이씨는 3년 전 시니어 직업훈련을 통해 전자부품을 생산·조립하는 소규모 회사에 취업하면서 이혼의 위기를 넘겼다. 식비까지 꼬박 아끼면서 이씨가 받는 급여는 월 110만원 남짓. 그런 이씨가 지난해 5월부터 주말마다 홍성을 찾고 있다. 이씨는 이곳에 나무를 심기로 마음먹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이씨는 “부부가 함께 일하면서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여러 업종을 찾다가 백일홍 등 ‘돈’ 되는 묘목을 심기로 계획을 세웠다”며 “장기적인 투자이면서도 안정성이 높아 모아둔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중견기업에서 임원으로 은퇴한 이씨는 처음엔 도심에서 인생2막을 준비했다. 퇴직금에 금융권 대출을 더해 인천에서 치킨집을 운영했다. 그렇게 4년.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을 무렵인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이씨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하루 치킨 300~400마리 팔던 매출이 30~40마리로 10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4개월을 버티다 가게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치킨 가게를 처분하고 나니 무일푼은 고사하고 자식들 눈치 보느라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며 “지금은 낮은 보수를 떠나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영업이사로 퇴임한 김모(64)씨. 김씨는 현재 서울 구로구에 있는 6평 남짓한 다세대연립 지하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이따금 있는 일당 6만원의 인테리어 공사현장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김씨가 가족과 갈라선 것은 3년 전. 30년을 넘게 살던 부인이 ‘경제력’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면서부터다. 지금은 자식(남매)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김씨 역시 50대 중반에 퇴직한 후 치킨집과 PC방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아직 2000만원 정도의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다. 김씨의 수첩에는 올해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일자리 박람회 등의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김씨는 “몇 년째 고정적인 수입 없이 지내다 보니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며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인기척 없고 캄캄한 지하 셋방 문을 열면 숨이 탁 멎을 정도로 삶이 고통스러워 나쁜(자살) 생각을 한 것도 셀 수 없다”고 한탄했다.

▲지난 4일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2013 충주시 노인일자리 경진대회에 참가한 한 할아버지가 자신이 작성한 이력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60세 이상 실업률 급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0세 이상 연령층의 실업률만 유독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은 2009년 1.4%에서 2010년 2.4%로 1.0%포인트 올랐는데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5%, 1999년 2.4%와 비슷한 수준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모든 연령층의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과는 달리, 향후에는 노년층의 높은 실업률이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남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우리나라 60세 이상 연령층 실업률의 추이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노년층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촉구했다.

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노년층은 노후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은퇴하고, 과거와 달리 노후를 보장받지도 못하면서 경제활동 참여율이 빠르게 상승했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한 결과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수요 급증, 공급은 ‘제자리’

전문가들은 60대 연령층의 실업률 상승 원인으로 일자리 수요 급증을 꼽았다.

60대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 반면 구직을 원하는 60대 이상의 고령화 인구는 해마다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손성동 상무는 “60대 이상 연령층의 고용환경이 갑자기 악화했다기보다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워져 구직에 나선 노인들이 늘어났다”고 풀이했다.

금융위기 이후 60대 연령층의 실업률 상승 원인을 노인들의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때 50대 중년층은 각 기업체의 중견급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고령층과 여성노동자는 비정규직에 집중돼 실직 피해가 컸다”고 진단했다.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어… 노년층 자살 급증

2026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드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는 2001년 1448명에서 2011년 4406명으로 10년 새 세 배로 증가했다. 하루 평균 12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얘기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9년 OECD가 조사한 65~74세 노인 자살률(10만명 당 자살자)에서 한국은 81.8명으로 1위였다. 미국(14.1명)의 5배, 영국(4.8명)의 20배나 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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