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한동철 서울여대 교수 "존경받는 부자가 되는 길"

입력 2012-1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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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서울여대 교수.
부자학에서 규정하는 부자는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물질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그 일을 통해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

이 정의는 필자가 오랜 기간 동안 부자학의 창학을 준비하면서 만든 개념이다. 물론 수 많은 전세계 기록언어들을 읽고 그리고 수 많은 분들과 대화하고 나서 필자 나름대로 개발한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발표한 수 많은 언론기고문들과 다수의 책들과 논문들에서 일관되게 사용한 독창적인 정의다.

필자가 내린 부자에 대한 정의는 조선시대, 프랑스, 영국의 중산층의 정의와 상당히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인 중산층의 개념은 1차원적이고, 부자학적인 중산층의 개념은 3차원적이다. 과거의 중산층들은 1차원적인 접근에 함몰된 경향이 강했다. 물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그것이었다.그러나 현재와 미래의 중산층들은 3차원적인 접근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자의 정의와 중산층의 정의가 비슷하게 수렴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가 전세계 인류역사 기록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한 것은 중산층 중에서‘본인이 부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공유현상이었다. 이럼 점에서 중산층과 부자, 부자와 중산층은 공유의식의 의도적 분할일 뿐이다.

물질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물질 집착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 물질 집착적 행위들을 기억하고 있다.

부모의 유산을 혼자서 차지하기 위해 형제를 속이는 행위, 친구나 지인에게 빌린 돈을 의도적으로 갚지 않는 행위, 사기업과 비영리단체에서 사익형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 정부나 공공기관 등에서 사회적 재산을 횡령하는 행위 등 그 예는 수없이 많다.

물질에 집착해 축적한 부(富) 추악한 것이다.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물질을 획득하는 사람들은 엄벌에 처하는 게 마땅하다.

중국에서 나쁜 부자는 바로 극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나쁜 부자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유용하거나 횡령하고도 응분의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질을 추구하거나 집착하면 타인의 물질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물질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더 많은 물질을 가지려 하면 타인의 물질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답은 나와있다. 세상이 밝아지려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물질집착 관념에서 벗어아 물질 제한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 욕구를 스스로 제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인류 역사상 300년 가까이 칭송받는 부자가문은 전 세계에서‘경주 최부잣집’이 유일하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도 그 역사가 150년 밖에 안 됐다.

재산으로만 따졌을 때 경주 최부잣집은 세계적인 거부(巨富)에 속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부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 최부잣집이 대한민국에서 칭송받는 부자가문이 된 것은 물질집착에서 스스로 벗어났기 때문이다.

부자학도 새로운 각도로 바라봐야 하는데 그 첫걸음은 물질에 대한 욕구를 줄이는 것이다. 정신의 탁월성과 사회의 중요성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정신이 물질보다 우선한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정신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도 깨끗한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평가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남을 눌러야겠다’라는 악심에서 출발한 정신은 결국에는 사악한 파노라마에 휩쓸려서는 타락의 극치로 빠져들게 된다. 반면‘세상을 돕겠다’라는 선심에서 배어나오는 정신은 우리를 흐믓하게 만든다.

한 평생 홀몸으로 재래시장에서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하고 정작 자신은 허름한 옷을 입고 살겠다는 어느 할머니의 정신, 이러한 정신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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