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퇴직 준비 미리 못했다면…
대기업 이사로 근무하던 김모(52)씨는 갑작스런 퇴직 통보를 받았다. 언제가는 회사를 그만둘 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차마 몰랐다. 퇴직을 당하고나서야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회사 일만 바라보며 살았던 만큼, 다른 곳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성실함이 아니라 미련스러웠던 것이라는 부질없는 책망도 해본다.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고민 = 퇴직자 등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부담은 바로 자녀들의 교육비다. 김씨에게 닥친 가장 현실적인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게다가 김씨는 아이 2명을 모두 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이기도 하다. 그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직장 명함을 내려놓은 이제부터가 걱정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수는 1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자녀를 모두 유학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도 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엄마와 자녀를 보낸 가족은 연간 5000만원 이상 비용이 드는 게 보통이다. 자녀 2명에 대학 4년의 기간이라면 무려 4억원 이상을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방학 중 귀국하거나 기러기 아빠가 1년에 한두 번 드나든다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초기 정착비가 필요한 경우라면 더 큰 목돈이 필요하다.
퇴직금을 받긴 했지만, 미래를 준비해야 할 퇴직금을 자녀의 교육에만 쏟아부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한다면, 지금까지 쓴 돈도 아깝고 아이들의 원망을 받을까봐 겁나는 게 직장을 그만둔 새가슴 아빠의 처지다.
◇건강부터 챙겨라 = 몇 주일 집에서 쉬다 보니 처음에는 좋았지만, 김씨는 점차 여기저기 쑤시는 것이 느껴진다. 눈도 예전 같지 않다.
미국, 일본에서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퇴직 후에 생활비가 줄었는가를 조사해 본 결과 줄지 않았다는 대답이 30~40%를 차지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병원비와 간병비에 있었다. 은퇴 후 가장 큰 변수는 암 같은 큰병에 걸리는 것이다. 갑자기 변한 생활 패턴에 심리적인 상실감까지 겹쳐 건강이 약해 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늘 운동하고 몸 생각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퇴직 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로 체계적인 건강검진을 꼽는다.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은 최소한의 것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정밀검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심리가 불안정해진다면 심리치료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몸 걱정, 돈 걱정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본다든지, 취미생활을 갖는다든지, 여행 등을 통해 마음에 평안을 찾는 것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늦깎이 구직, 성공할 수 있을까 = 김씨는 평소에 알던 친구들과 일면식이 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다시 직장을 잡는 첫 번째 요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만날 때마다 마음은 편치 않다.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동정을 받는 것 같고, 업무상 알던 사람들에게는 전화를 받는 목소리부터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헤드헌터로부터 몇 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전과 비교해 볼 때, 잘 알지도 못하는 업체인데다가 조건도 그리 탐탁지 않다.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번 해보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은퇴하면 퇴직금과 집 한 채가 전 재산이다. 은퇴 후 생활이 팍팍해지는 이유다. 따라서 평균 수명이 늘어난 현대사회에서는 50대, 60대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가 됐다. 재취업에 도전하려면 우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의 지위와 조건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면 현재의 위치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조직에서도 과거 회사의 문화와 업무 스타일을 잊고 새로운 환경에 몸을 맞춰야 한다. 만일 기존에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뒤로 미루지 말고 곧바로 차근차근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노년까지 생각하며 오랜 기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금상첨화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자 = 김씨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와인을 떠올렸다. 와인을 일로 연결시킬 수는 없을까. 김씨의 머릿속에는 소믈리에가 떠오른다.
국내 와인 교육기관으로는 △와인나라아카데미 △WSA △아카데미 듀뱅 △BWS강남와인스쿨 △경희대 관광대학원 와인소믈리에 과정 △김준철와인스쿨 등이 있다. WSA에서는 영국 국가공인 자격증을, 아카데미 듀뱅에서는 숍어드바이저 인증(일본지사 발급), BWS강남와인스쿨에서는 WEC(Wine Expert Course)의 공식교육기관 ‘Universite du Vin’의 수료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와인 아카데미에서는 포도 품종, 와인 감별·제조법 등 기본지식 교육은 물론, 창업·서비스·영업·수입 등 실무교육도 병행한다. 이외에 커피를 좋아한다면 바리스타, 빵을 좋아한다면 제빵 전문가도 있다.
취미를 바로 직업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해도, 취미생활에 몰두하다 보면 관심 영역이 확장돼 새로운 직업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많다. 최근에는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퇴직 전 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기업 경영자로 퇴직한 후 60대 중반의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회복지 전문가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김씨에게 당장 필요한 건, 힐링이다. 몇 십년간 일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 안식을 줄 필요가 있다. 당장 막막하지만 여행이라도 다녀 오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