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서 사던 '그 가방', 한국에 왔다 [솔드아웃]

입력 2024-06-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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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 하나가 생겼습니다. 정교하게 세공한 돌을 떠올리게 하는 흰색 벽과 기둥은 길거리를 걷던 시민들의 눈길도 사로잡았는데요. 가로수길을 마주 보고 있는 매장 정면의 대형 유리창으로는 유연한 가죽을 연상케 하는 둥글고 따뜻한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하이엔드 레더 브랜드, 폴렌느(Polène)가 국내 첫 매장을 오픈한 겁니다.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세계적인 하이엔드 브랜드에 익숙하다면 폴렌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Z세대 사이에서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소장 가치가 있으면서도, 트렌디함을 놓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인기를 끌고 있죠.

폴렌느가 국내에 진출한다는 소식은 알음알음 퍼져 눈길을 끌었는데요. 마침내 문을 열면서 "공식 홈페이지에서 품절이던 가방 드디어 샀다" 등의 후기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폴렌느 홈페이지 캡처)

대대로 이어지는 '장인 정신', 미니멀리즘 만났다

폴렌느를 논하기 전에 클래식한 캐주얼웨어의 대명사, 세인트 제임스를 언급해보겠습니다. 한때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마린룩' 하면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떠오르는데요. 이 패턴 티셔츠의 원조 격 브랜드가 세인트 제임스입니다. 1850년부터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방적 공장을 운영하던 레옹 레갈레는 1989년 공장의 이름을 세인트 제임스로 바꾸고 법인을 세웠습니다. 실을 팔던 일은 뒤로 하고 직접 옷을 생산하기로 한 거죠.

이곳의 양모 스웨터는 뛰어난 보온력과 물에 강한 특성으로 특히 선원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해안 마을에서 탄생해 선원들에 의해 알려진 옷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스포츠 무대에서였는데요. 1956년 요트 대회 챔피언이던 에릭 타바를리가 입은 스트라이프 옷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세인트 제임스는 마린룩의 상징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죠. 미술 작가 피카소, 디자이너 코코 샤넬, 배우 오드리 헵번, 밴드 너바나 멤버 커트 코베인 등도 사랑한 옷입니다.

130년 넘는 세월 동안 세인트 제임스가 지속된 건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 덕분입니다. 바다에서 태어난 브랜드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 제품명에 해군이나 노르망디 바다의 섬 이름을 붙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요. 이 브랜드의 창시자, 레옹 레갈레의 증손자들이 론칭한 브랜드가 바로 폴렌느입니다.

2016년 파리에서 폴렌느를 론칭한 세 남매 앙투안, 마티유, 엘사 모테이는 프랑스 패션계에서 자라면서 쌓은 취향, 그리고 헤리티지(역사·유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수장 앙투안은 "가문 비즈니스를 접하고 살아온 우리는 장인 정신과 패션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클래식한 아름다움과 퀄리티를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증조할아버지의 장인 정신을 물려받은 걸까요? 이들은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 스페인에서 1년 이상을 보냈다고 합니다. 폴렌느만의 디자인을 개발하는 동시에, 지향점에 딱 맞는 소재를 연구하기 위해서였죠. 이들의 목표를 이해하면서도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 위해 공을 들였고, 결국 가죽 공예로 저명한 지역, 스페인 남부의 우브리케에 생산 터를 잡게 됐습니다. 이곳의 가방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유연한 형태, 세심한 디테일이 엿보이는 버클과 잠금장치 등이 더해진 폴렌느의 가방은 간결하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폴렌느는 "유기적인 선과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형태, 보석을 세공하듯 세심히 제작한 잠금장치와 버클까지. 폴렌느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간결함과 독창성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자평하죠.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이 폴렌느 가방을 드는가 하면,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도 해당 브랜드의 가방이 등장해 이목을 끈 바 있습니다. DL그룹(대림그룹) 4세 이주영 씨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폴렌느의 가방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도쿄의 폴렌느 플래그십 스토어. (출처=폴렌느 홈페이지 캡처)

가방이 일본 여행 기념품?…웨이팅 '꿀팁' 오가기도

최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 착취 정황이 이탈리아 당국의 조사로 적발되면서 경악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디올에 핸드백을 생산해 공급하는 한 중국 업체는 일부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15시간 교대 근무를 하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 생산한 핸드백을 53유로(약 8만 원)에 디올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원가 8만 원인 가방이 디올 매장에서 2600유로(약 384만 원)에 판매된 셈입니다.

수많은 브랜드는 생산 라인 일부를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로 이전하면서 생산 비용을 줄입니다. 폴렌느는 유서 깊은 공방에서 모든 제품을 제작하는 남다른 고집(?)으로 눈길을 끄는데요. 가격도 20만~80만 원대 수준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죠.

여기에 친환경적 노력도 더해졌습니다. 폴렌느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인증받은 고급 가죽을 사용합니다. 화학적 오염으로 환경에 해를 끼치는 걸 최소화하며, 남은 자투리 가죽은 참이나 열쇠고리 컬렉션을 만드는 데 쓴다고 합니다. 엠제코(MZ+ECO) 세대로 불릴 만큼 친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Z세대의 눈길을 끈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거죠.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 높은 퀄리티, 합리적인 가격, 친환경 가치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폴렌느는 국내에선 '일본 여행 기념품'(?)으로 통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가로수길 매장 오픈 전까지 폴렌느 매장은 전 세계 도시 세 군데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일본 도쿄였는데요. 이 중에서도 일본은 주말을 활용해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비행시간이 짧은 데다가,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여행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비교적 덜해 가방을 보고 구매하려는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도쿄 폴렌느 매장을 방문한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1시간 웨이팅은 기본이다", "매장 오픈하기 30분 전부터 기다리는 걸 추천한다" 등 팁들이 쏟아지기도 했죠. 폴렌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면,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에도 매장을 내달라는 전 세계 팬들의 댓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5일 오픈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폴렌느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제공=폴렌느)

뚜렷한 아이덴티티·합리적인 가격…컨템포러리 브랜드 인기 이어질 듯

폴렌느뿐 아니라 이른바 '신명품'으로 불리는 해외 컨템포러리 브랜드들은 유행을 넘어 이미 Z세대 일상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물산은 아미, 메종 키츠네, 자크뮈스, 가니 등 인기 브랜드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국내 주요 의류기업들 영업이익이 사실상 반토막 난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홀로 웃은 이유도 컨템포러리 브랜드 덕분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SI)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3543억 원, 487억 원을 기록했다고 1월 공시했는데요. 전년 대비 각각 12.8%, 57.7% 감소한 수치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한섬도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0.9%, 40.3% 줄어든 1조5289억 원과 1005억 원을 기록했죠. 반면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49%, 7.78% 늘어난 2조510억 원, 194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같은 컨템포러리 브랜드의 인기는 고유한 아이덴티티와 콘셉트를 지키면서도, 하이엔드 명품들보다는 합리적인 가격대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특징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패션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가심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비교적 낮은 가격에 스타일리시한 감성까지 갖춘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거죠.

이렇다 보니 유통업계에서는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아예 신규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꾀하기도 하는데요. 가치 소비와 트렌드를 동시에 좇는 Z세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국내에 새롭게 등장하는 컨템포러리 브랜드들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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