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공장가동 중단에 신규 투자 무기한 연기…“앞으로가 더 문제”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태양광은 촉망받는 산업이었다. 관련 기업들은 밀려드는 주문에 공장 신증설에 나섰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잠시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태양광 수요가 주춤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태양광 산업을 강타했다.
특히 솔라셀, 모듈, 시스템 등 후방산업에서 입은 타격은 전방산업(폴리실리콘, 잉곳·웨이퍼)에 까지 고스란히 전달돼 산업계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수출에 주력하던 국내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공장 가동률은 곤두박질치고 밸류체인 전반의 가격 폭락으로 채산성은 날로 악화됐다. 급기야 과거 잘나가던 태양광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쌓였다.
◇ 공장가동 중단…팔 곳이 없다 = 태양광 시장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폴리실리콘, 잉곳·웨이퍼·솔라셀 등 소재 부문의 장기 공급계약 해지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신규 투자를 무기한 연기하는 등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업황 회복 시 재가동을 전제로 폐쇄했던 태양광모듈 생산1공장(충북 음성) 출입구의 빗장은 17개월째 걸려 있다. 충남 대죽에 위치한 연산 3000톤 규모의 KCC 폴리실리콘 생산라인 역시 작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멈춰선 상태다.
기업들의 신규 투자도 대부분 보류됐다. OCI는 업황 부진으로 폴리실리콘 매출이 급감하자 4·5공장 신규 건설 투자를 근래에 잠정 연기했다. 지난해 6월 여수에 5000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던 LG화학도 4개월 만에 ‘시장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무기한 연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은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돼야 하는 원가 경쟁 산업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너도나도 신증설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투자가 오히려 독이 돼서 돌아오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 큐셀·웅진 몰락, “산업 구조조정 지속”= 세계적인 태양광 기업인 독일 큐셀의 파산과 지주회사와 계열사의 동반 법정관리 신청으로 발생한 웅진그룹 사태는 태양광 산업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9년 설립된 큐셀은 독일 본사의 대단위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R&D) 센터와 말레이시아 모듈공장, 미국·호주·일본 판매법인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솔라셀 세계 생산량 1위 기업으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태양광 시장의 장기 침체를 견디지 못한 큐셀은 결국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이후 한화그룹이 인수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웅진그룹 사태도 태양광 사업이 화근이 됐다. 법정관리 신청 후인 지난달 5일 윤석금 회장은 “태양광에 너무 무리하게 투자를 했다”고 시인했다.
웅진그룹은 웅진에너지(잉곳·웨이퍼)와 웅진폴리실리콘을 중심으로 태양광 사업을 진행해 왔다. 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웅진폴리실리콘의 경우 31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중 일부를 기한 내 갚지 못해 우리은행 등 대주단으로부터 최근 디폴트(부도) 통보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제2, 제3의 웅진사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은 유독 정부의 정책과 외부 변수에 좌우되는 경향이 심하다”면서 “내년 상황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태양광 산업의 구조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기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태양광 시장의 불확실성마저 해결되지 않으면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