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적용에 대한 기준은 각 국가마다 다르다. 국내 법이 배임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달리 해외 주요 국가들의 배임죄 적용범위와 처벌 수위는 비교적 관대하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배임죄에 대해 대부분 경영자의 판단문제로 귀결시켜 형사처벌을 가하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주요 해외국가들은 경영 판단의 입장에서 판결해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처벌을 내리더라도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처벌에 그친다.
지난 2009년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미국 보험사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이 모리스 행크 그린버그 전 최고경영자(CEO)가 퇴직금 펀드 중 43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횡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혐의 없음’을 선언했다.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그린버그 전 CEO가 이끄는 투자회사 스타 인터내셔널 측이 4년 전 AIG의 장기보상 계획이 중단 될 당시, 회사 퇴직금 펀드운용 등과 관련해 배임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린버그의 횡령 및 배임혐의에 대해 무죄를 결정했다.
당시 AIG는 1970년 이후 AIG의 장기 퇴직연금 운용을 맡아온 스타인터내셔널이 AIG 임원들에게만 유리한 주식을 보유하도록 ‘구두 신탁’했고 임의로 주식 매각을 추진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이를 반려했다.
또 성추문 논란으로 HP CEO직에서 불러난 마크 허드 전 휴렛팩커드(HP) CEO는 지난 2010년 8월 배임 혐의로 법정에 섰지만 당시 재판을 담당한 댈라웨어 대법원은 ‘혐의 근거 부족’으로 이를 기각했다. 이후 마크 허드는 HP CEO에서 물러나 현재 오라클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해외국가들의 배임에 대한 ‘관대한 잣대’는 지난 1985년 프랑스 대법원이 기업인 배임죄에 대해 내린 ‘로젠블룸’판결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프랑스 대법원은 그룹경영에서 있어 최고경영자의 자유로운 경영 행위를 인정했고 이후 ‘로젠블룸’판결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등 주요 해외국가의 배임죄 판결 기준에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경우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고 권한 밖 경영활동이 아니라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역시 기업인의 자율적인 경영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배임혐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가는 일본과 독일 정도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경영자의 행위가 합리적이었다는 판단이 설 경우 배임죄를 묻지 않는 등 탄력적인 법 적용을 시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 불거진 일본 내 1위 제지기업 ‘다이오제지’를 둘러 싼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자회사 4곳을 통해 본인명의 은행 계좌로 7회에 걸쳐 32억 엔(약 478억원)을 입금하도록 지시한 이카와 모토타카 전 다이오제지 회장을 특별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당시 모토타카 전 회장은 자신의 계좌로 송금된 돈을 경영행위가 아닌 카지노 등 도박행위에 대부분 썼기 때문에 엄격한 잣대가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