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돈의 맛' 수상 불발…호들갑이 낳은 씁쓸함

입력 2012-05-28 12:32수정 2012-05-2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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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한국 영화의 낭보는 없었다.

27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5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가 수상에 실패했다. ‘투상수’ 로 불리는 두 감독의 수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임 감독의 ‘돈의 맛’이 큰 주목을 끌었다.

우선 공식 스크리닝(상영회) 스케줄이 영화 팬들을 들뜨게 했다. 폐막 하루 전인 26일 오후였다. 유럽권 영화가 주를 이루는 칸 영화제 특성상 상영회가 뒤로 잡힐수록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게 일반 적이다. 초반에 상영회가 잡힐 경우 작품 관계자들이 영화제를 뜨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만약 수상작으로 선정될 경우 주인공 없는 잔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수상 가능성이 높은 영화는 폐막 직전에 배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주목은 ‘극찬’이었다. 영화제 개막 전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칸 영화제 공식 선정 영화 중 가장 훌륭한 미장센” “다시 한 번 임상수의 놀라운 스타일과 촬영 방식을 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른바 ‘칸 공식’도 기대감을 높였다. 지금까지 경쟁부문에 한국 영화 두 편이 함께 초청된 적은 총 네 번이다. 그 네 번 모두 수상의 기쁨을 거둬들였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초청됐고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김기덕 감독의 ‘숨’에선 ‘밀양’이 여우주연상을, 2010년 이창동 감독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선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공식 상영회 뒤 이어진 ‘7분간’의 기립 박수도 ‘혹시’란 ‘장미빛’ 기대를 예감케 했다. 유럽 관람객들은 상영회 동안 ‘폭소’를 거듭하며 ‘돈의 맛’에 빠져 든 분위기였다. 일부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7분간의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는 국내 언론의 현지 취재 보도가 쏟아졌다. 통상 칸 영화제는 영화 관계자에 대한 예의로 3~4분간의 기립박수가 관례다. 임 감독은 2010년 ‘하녀’가 상영된 후 5분의 기립박수를 경험했다. 그 보다 2분이 더 긴 박수이니 ‘수상이 가능한 것 아니냐’ 늬앙스의 현지 국내 취재진의 보도가 앞 다퉈 나왔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뒤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폐막식 오전 발표된 경쟁 부문 진출작 평점에서 최하점을 기록했다. 4점 만점에 1.4점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는 2.1점이었다.

영화제 공식 데일리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2년 전 칸을 방문한 ‘하녀’에 비해 세트만 화려해지고 커졌을 뿐”이라며 “새로움이 없다”고 혹평했다. 이 같은 혹평은 국내 언론시사회 이후 일부 언론을 통해서도 언급된 부분이다.

임 감독은 기본적으로 불편한 진실에 포커스를 맞추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반골 기질이 다분하다는 평도 많았다. 이번 ‘돈의 맛’ 역시 재벌가에 대한 노골적인 비꼼으로 인해 제작 단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역시 임상수다’는 말이 돌면서 기대감이 상승했다. 하지만 공개된 영화는 전혀 ‘임상수 답지 않다’는 평이 강했다. ‘진부한 클리셰(전형성) 투성이’ ‘무뎌진 칼날’이란 혹평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미장센에만 치중한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국내와 서양의 시각차를 논했던 부분도 나왔다. 시사회 뒤 기자와 만난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 속에 녹아 있는 고 장자연 사건이나 특정 재벌을 지적하는 듯한 내용을 과연 칸 관계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런 의문 부호에 대해 연출자인 임 감독도 현지에서 시상식 두 시간 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관객들은) 로컬하게 보는 것 같다”며 “난 한국 대중을 위해 영화를 만들 뿐이다”고 애써 태연해 했다.

임 감독의 ‘호기로움’이 이번 수상 불발의 요인이란 지적도 있다. 26일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서양 언론과 영화 관계자들을 앞에 두고 “앞으로 백인들을 공격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폭탄 발언을 했다. 당시 현지 분위기를 전한 국내 언론에 따르면 현장을 가득 메운 서양 언론 관계자들의 인상이 일순간에 굳어졌다고 한다. 당시 앞뒤 인터뷰 정황을 보자면 그의 ‘공격 발언’은 단순한 ‘공격’의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제 주최인 백인의 안방에서 할 언급은 아니었단 말이 국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더욱이 인종 문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서유럽권에서 백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으로 들렸기에 더욱 좋지 않은 인상을 줬을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임 감독 역시 폐막식 전 국내 언론들과의 만남에서 “좀 더 부드럽게 말했어야 한다”고 말실수를 인정했다.

그 때문일까. 임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이 끝난 뒤 티에리 집행위원장과 식사를 했다고 한다. 영화제 개막 전 ‘돈의 맛’을 극찬한 인물이다. 식사 자리에는 심사위원들도 전부 동석했다고 한다. 당시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티에리 집행위원장이 임 감독에게 상당히 차갑게 대했단다. 이후 폐막식 당일 점심 때 임 감독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임 감독은 수상 불발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칸 효과’를 언급하며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좀 더 수월했을 텐데”란 아쉬움은 전했다.

결국 이번 ‘돈의 맛’ 수상 불발은 영화가 말한 ‘돈의 맛’처럼 ‘언론’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씁쓸한 맛’이었다. 그래서 ‘돈의 맛’이 지닌 모욕적인 떫음 보다 더 그렇게 다가온다.

제65회 칸 영화제 수상작

▲황금종려상 : ‘아무르’ (미하엘 하네케, 독일)

▲심사위원대상 : ‘리얼리티’(매트 가롱, 이탈리아)

▲감독상 :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포스트 텐브라스 룩스’, 멕시코)

▲남우주연상 : 마드 미켈슨(‘더 헌트’ 덴마크)

▲여우주연상 : 크리스티나 플루터, 코스미나 스트라탄 (‘비욘드 더 힐즈’ 루마니아)

▲심사위원상 : ‘엔젤스 쉐어’ (켄 로치, 영국)

▲각본상 : ‘비욘드 더 힐즈’ (크리스티앙 문주, 루마니아)

▲황금카메라상 : ‘비스트 오브 더 사우던 와일드’ (벤 제이틀린, 미국)

▲단편부문 : ‘사일런트’ (레잔 예실바스,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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