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씨 소송 이어 이재현 회장 '미행' 파문…CJ와 해묵은 갈등, 그룹 개입 드러날 땐 치명적
국내 대표기업 삼성이 큰 위기에 빠졌다. 조직 전반에 어느 때보다 강한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외부가 아닌 오너 일가로 인한 내부 악재라는 점에서 조직원들의 심기도 불편한 듯 보인다. 실제로 24일 아침 서초사옥에 출근하는 직원들은 어두운 표정 일색이었다.
삼성은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씨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삼성물산 직원의 CJ 이재현 회장 미행 사건까지 터져 나오자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CJ그룹은 지난 23일 이 회장을 미행하다 붙잡힌 삼성물산 김 모 차장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삼성그룹에는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지난 14일 이재현 CJ 회장의 부친 이맹희 씨가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7000억원대의 재산 분할 소송 제기한 지 9일 뒤 벌어진 일이다.
특히 최근 사건은 형제 간의 돈 문제가 발단이 됐다는 점에서 삼성 뿐 아니라 재계 전반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을 질타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어서 시기적으로도 최악이다.
삼성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선도하면서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고 있다. 그만큼 기업 이미지가 좋다는 뜻이다.
올 들어서도 제과제빵 시장 철수 등 동반성장에 앞장섰고 수 백억원을 들여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등 그룹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지만, 최근 벌어진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는 한숨 섞인 얘기도 나온다.
삼성은 메가톤급 태풍에 대해 일단은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CJ 이재현 회장에 대한 미행 사건은 그룹 차원에서 지시한 일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세상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과거 CCTV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CJ그룹(당시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가 진행 중이던 지난 1995년 서울 장충동 이재현 회장의 이웃집 옥상에 삼성그룹이 CCTV를 설치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이재현 회장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삼성 측이 CCTV를 철거했다. 이는 양 그룹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이 CJ그룹의 이 회장을 미행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고, 특히 그 배후에 그룹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 치명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 때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도덕성 문제로 비화한다면 재벌과 오너 문화에 대한 개혁 논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얘기다.
재계는 이번 사건들이 삼성의 사기저하와 공격경영 후퇴 등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스마트TV 등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를 누비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 최근에는 애플과의 특허 전쟁 등 글로벌 강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부가 아닌 내부 문제로 인해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이 흔들린다면 이는 한국경제 전체에 큰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