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 약진·실적 따른 ‘신상필벌’
재계 인사시즌이 도래했다. 지난달 30일 LG전자와 LG생활건강 등 LG그룹 계열사들을 시작으로 삼성, 코오롱, GS, 현대백화점 등 주요그룹들이 사장급을 포함한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LG그룹이 예년에 비해 2주 가량 인사시기를 앞당긴 것을 비롯해 주요그룹들이 인사를 앞당겨 실시했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경영환경이 불투명함에 따라 올해는 예년에 비해 사장단을 포함한 임원인사가 앞당겨진 것”이라며 “조기에 조직을 안정적으로 구축, 내년을 대비하고자 하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7일까지 단행된 임원인사의 특징은 ‘총수일가의 약진’과 ‘실적에 따른 신상필벌’로 요약할 수 있다.
총수일가들은 책임경영 요구가 강해지면서 경영 전반에 나서고 있다. 또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경영실적을 거둔 임원들에게는 승진이라는 커다란 선물이 주어졌다.
권희원 사장은 LG전자 TV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지난해 10월 HE사업본부장에 선임된 이후 FPR방식의 시네마 3D TV를 세계시장에 성공적으로 출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LG전자가 휴대전화사업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실적이 악화됐지만 TV사업은 꾸준히 선방한 점도 승진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석용 LG생건 부회장도 지속적인 경영실적 상승으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차 부회장은 2005년 취임 이후 27분기 연속 10% 이상의 매출?영업이익 증가라는 성과를 올렸다.
LG생건은 “취임당시와 비교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배, 5배 늘어났다”며 “주가 역시 15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혁혁한 성과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이 지난 7일 실시한 사장단 인사 내용을 보면 이건희 회장의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삼성전자 권오현 사장과 삼성물산 정연주 사장은 모두 각사의 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로가 반영됐다.
이외에도 사장으로 승진한 6명도 혁혁한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별 중의 별’이라는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총수일가 잇단 승진…경영참여 확대= 올해 재계 임원인사 최대관심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승진여부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난 1일 “지위나 역할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이 사장의 승진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의 인사내용을 보면 총수 일가들의 승진이 잇따르면서 경영참여가 확대됐다.
허창수 GS그룹의 동생인 허진수 GS칼텍스 사장이 부회장으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동생 정교선 사장도 올해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경영기획본부장도 지난 6일 단행된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 한국타이어의 본격적인 3세 경영시대를 알렸다.
이와 함께 LS그룹 총수 일가인 구자은 LS니꼬동제련 부사장도 올해 임원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 후 LS전선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LS 관계자는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지만 구자은 부사장의 승진이 사실상 결정됐다”고 말했다. 구 부사장은 LS그룹 공동 창업주의 한 사람인 고(故)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외아로, 사장 승진을 통해 LS그룹은 본격적인 사촌경영체제로 접어들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일가들의 승진은 일정 시기가 되면 이뤄지게 마련”이라면서도 “최근 들어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것은 불안정한 대내외 경영환경에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시인사 새 트렌드로 자리매김= 최근들어 연말이나 연초에 임원인사를 일괄적으로 단행하던 모습에서 수시로 인사를 실시하는 모습이 늘고 있다.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서초사옥에 출근한 이후 삼성테크윈의 방위산업 비리문제와 삼성전자 LCD 사업부의 실적부진으로 사장을 교체하는 이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는 정몽구 회장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문책성 인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국내 판매 담당 사장에 김충호 국내영업본부장 부사장, 해외영업본부장 부사장에 김승탁 영업기획사업부 전무를 각각 승진 발령하고 양승석 현대차 국내 및 해외영업 담당 사장은 고문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보다 5개월 앞선 4월에는 이현순 연구개발총괄본부 부회장이 물러나고 양웅철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등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사가 이미 이뤄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도 있지만 정몽구 회장이 수시인사를 통해 임원들에게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수시인사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과거처럼 연말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