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돈버는 정부...경쟁력 멍드는 기업승자의 저주 현실되나...거액 베팅에 속타는 이통사
억! 소리나는 무한베팅이 정부 주도하에 벌어졌다. 도박판을 방불케 하는 돈잔치는 다름아닌 국내 최초 주파수 경매 얘기다.
지난 17일 경기도 분당구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서 열린 주파수 경매 첫날 현장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SK텔레콤과 KT는 예상대로 1.8기가헤르츠(㎓)를 차지하기 위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그 결과 1라운드 최저경쟁가격인 4455억원이 11라운드를 거치면서 4921억원까지 치솟았다.
하루만에 466억원이 올랐으나 경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매는 18일 오전 9시 속개됐지만 언제 끝날지, 누가 얼마에 낙찰받을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상대가 포기할 때 까지 높은 가격을 써내는 입찰자가 최종 승리하는 이른바 ‘동시오름입찰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방송통신위원회는 심사를 거쳐 각 통신업체에 주파수를 할당해 왔다가 올해 경매제로 바꿨다. 정부는 경매제를 도입해 주파수 할당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효율적인 배분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승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업계는 낙찰가가 1조원대로 치솟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다.
경매가 진행될 수록 신규 주파수 확보에 따른 비용은 하루에 500억원 꼴로 늘어나고 있어 SK텔레콤과 KT 중 어느 쪽이 1.8㎓ 대역의 주파수를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승자의 저주'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주파수 재할당에 따른 수천억원대 사용료 부담 또한 이동통신사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올 한 해 이동통신 3사가 주파수 사용대가로 납부해야 할 금액이 1조50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여기에 새로운 주파수 할당 대가와 전파 사용료 등을 합할 때 10년 동안 15조원 이상의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는게 업계의 계산이다.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한 주파수 장사에 배를 불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통신사가 투자여력을 잃게 되면 중장기 플랜하에 이뤄지는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 사업차질이 불가피 하다. 또 자금압박으로 기껏 확보한 주파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경매로 주파수를 낙찰받은 사업자가 사용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반납한 사례도 적지 않다. 2001년 이탈리아 통신업체인 IPSE2000는 경매끝에 10조원에 낙찰받은 주파수를 5년 만에 반납했다.
결국 이 모든 부담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향하게 된다. 어렵사리 내린 통신비도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더 올라갈 수 있다. 내달 출시될 LTE스마트폰의 요금제 책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존폐의 갈림길에 선 데이터무제한 서비스 또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경매비용이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꺾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최대한 많은 주파수를 확보해 동시경매를 진행하는 등 할당대가를 낮추고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박세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