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두레...선조들 '나눔문화' 다시 꽃피워야

입력 2010-10-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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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초일류 국가의 조건] 배려하는 사회 下

계·향약·두레·품앗이로 대표되는 우리 조상들의 나눔 문화가 최근 사회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일부 재계 인사들이 ‘아너 소사이어티’라는 고액 기부자 모임을 만들어 나눔에 동참하는 한편 ‘친서민 정부’를 표방하는 정부는 저소득층을 배려해 관련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고 있다. 기업들은 사회공헌 전담 조직을 만들어 기업시민으로서 제도권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앞장서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사회공헌에 참여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맞아 ‘양(量)’보다는 ‘질(質)’을, ‘실용성보다는 미(美)’를, ‘현재’보다는 ‘미래’를, ‘물질’보다는 ‘인격의 완성’을 중요시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의 나눔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옛날 우리 조상은 봄이면 농사 채비에 앞서 논밭을 정리하고 여름이 되면 본격적으로 모종을 내고 농작물들을 공들여 가꿨다. 가을이 되면 추수해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겨우내 먹을거리를 저장해뒀다 나눠 가지는 것이 풍속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작업이 ‘공동의 놀이’처럼 이뤄졌다는 점이다. 쥐불놀이·농악놀이·길쌈놀이는 우리 농경 사회에서 태어난 대표적 전통놀이다.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던 만큼 노동력 교환을 의식한 ‘관계’와 ‘나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안명옥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장은 “기부는 빈부의 양극화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균열을 막고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지탱하는 사회안전망”이라고 정의했다. 안 이사장은 “기부는 단순한 부의 재분배가 아닌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와 결속을 공고히 하는 시멘트 역할을 했다”며 “향약·두레·계·품앗이 같은 우리 조상의 전통이 기부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나눔’의 전통은 다소 모습을 바꾸게 된다. 한일 강제병합 시기인 1907년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고자 제공한 차관 1300만원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갚고자 한 운동으로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채보상운동을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효시”라고 평가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고 전했다.

시대를 건너뛰어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지자 우리 조상의 나눔의 정신이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봉사·자선·사회공헌 등으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기존의 가치관에는 변함이 없다. 봉사·자선·사회공헌은 한마디로 기부로 축약된다. 모두 시간과 물질·재능 등을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금 규모는 지난 1999년 2조9000억원에서 2008년 9조원으로 10년간 3배 이상 확대됐다. 이 가운데 개인 기부 비중이 두드러졌다.

아름다운재단이 조사한 1998년 기준 한국인의 1년 평균 기부액은 1인당 5800원이었지만 10년 뒤인 2008년에는 1인당 19만9000원으로 무려 34배가 늘었다.

기부문화가 정착되면서 방식과 대상도 다양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온라인 기부’다. 최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인 트위터에는 한 이주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왔다. 한국에서 쌍둥이 자매를 조산했는데 병원비가 없어 치료가 막막하다는 것. 이 사연을 접한 팔로워들로부터 무려 3000만원가량이 모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SNS를 통한 기부운동은 특성상 전파 속도가 빠른데다 여론의 반응도 빨라 젊은 층의 기부 참여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가다.

재능을 통한 기부도 활발하다. 재능 기부는 ‘프로 보노’라고도 불린다. 이는 ‘공익을 위하여’라는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줄임말. 원래는 미국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를 의미하지만 현재는 의료·교육·경영·전문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행하는 봉사활동을 통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됐다.

생활 속 ‘착한 소비’를 통한 기부도 있다. ‘착한 소비’는 판매액 일부를 기부하는 이른바 ‘착한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로 제3세계 노동자들과 직접 거래해 적정 수준의 이윤을 남겨주는 공정무역 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아름다운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가게의 경우 네팔·페루 등지에서 커피를 수입, 해당 수익금으로 개발도상국에 농기구 보급과 학교 설립에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교통카드 기부, 신용카드 포인트 기부, 기념일 나눔 등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성숙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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