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모(母)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자(子)회사가 많아지면서 중복상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중복상장에 대한 정의 및 규제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모든 모자 회사 동시 상장을 중복 상장으로 규정하면 기업의 신규 상장이 가로막히는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GC지놈(지씨지놈)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지씨지놈은 지난 2013년 설립된 임상 유전체 분석 전문 기업으로, GC녹십자의 자회사다. 이로써 녹십자(GC) 그룹 계열사 중 상장사는 △녹십자홀딩스 △녹십자 △녹십자웰빙 △녹십자엠에스 △지씨셀 △유비케어를 포함해 총 7곳이 됐다. 이외에도 뉴파워프라즈마의 도우인시스, 청담글로벌의 바이오비쥬, 솔브레인홀딩스의 우양에이치씨, 비츠로테크의 비츠로넥스텍 등 모회사가 상장된 상황에서 계열사가 별도 상장에 나서 IPO를 진행하는 사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간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모회사의 핵심 자회사가 별도 상장에 나서면서 모회사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나섰다. 실제 지난해 10월에는 오스텍코의 자회사 제노스코가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지만, 올해 4월 거래소는 모회사와의 '매출 중복·복제 상장'을 이유로 상장 미승인을 통보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중복상장에 대한 의미나 규정이 모호해 기업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당초 중복상장은 물적분할한 자회사가 추가 상장하면서 생긴 논란인데 외부 기업을 인수했거나, 모회사 기업가치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신설 자회사가 상장하는 경우까지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건 과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쪼개기 상장'이나 '더블카운팅(중복 계산)'으로 인한 지주사 할인을 야기하지 않는 경우에도 같은 중복상장의 프레임을 씌우면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한 회사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발전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기업 차원에서는 자회사 IPO를 추진하기 전에 소액주주들과의 사전 소통을 통해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등 문제가 없다는 점을 충분히 어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현물배당 등 주주 권익 보호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관계자는 "그간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가 IPO를 해도 큰 문제가 없었던 기업들은 양사 사업이나 경영이 독립적이고 이를 소액주주에게도 충분히 알렸던 곳들"이라며 "주주들과 다양한 방식의 소통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모자회사 동시 상장 모범 사례로는 2023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필에너지가 꼽힌다. 필옵틱스 자회사 필에너지는 IPO 과정에서 공모주의 20%에 달하는 물량을 기존 필옵틱스 주주에게 배당했다. 또 필에너지 상장 과정에서 구주매출로 얻은 자금 20%를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투입하는 등 파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