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A 씨는 한 대출업체로부터 15차례에 걸쳐 총 510만 원을 빌렸다. 다른 금융기관 대출이 어렵던 A 씨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이 대출을 이용했고, 연 1700~4000%대의 이자를 부과받아 890만 원을 상환했다.
이후 피해자가 대출 이자 등을 지급하지 못하자 대부업자들은 피해자를 협박하고, 나체 사진을 유포하는 등 극단적인 추심행위까지 벌였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은 지난달 29일 A 씨가 대부업체 관계자 6명을 상대로 진행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해당 대출계약이 단순한 고리대 계약을 넘어 사회 질서에 반한다고 보고 계약 전체를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A 씨가 지급한 원금과 이자를 전부 반환하게 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200만 원까지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통상 대출계약은 당사자 간 자유롭게 체결되는 사적 자치의 영역에 속하며, 불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허용 범위를 넘을 경우 법원은 일정 정도의 제한을 가해왔다.
즉 법원은 ‘이자제한법’ 등을 근거로 법정 최고이율(현 연 20%)을 초과하는 이자는 무효로 보지만, 원금과 합법적 수준(20%)의 이자는 유효하다고 판단해왔다.
이번 판결은 달랐다. 법원은 단순히 고금리 약정을 넘어 극심한 수준의 추심까지 고려해 전반적인 계약이 민법상 ‘반사회적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봤고, 계약 전부가 반사회적이면 원금과 이자 전액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물론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급여한 경우,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불법 계약임을 알면서 돈을 주고받은 경우, 피해자라고 해도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본 사안에서도 피해자가 고금리 계약임을 인식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법원은 급여자(피해자)가 수익자(대부업자)보다 책임이 현저히 가볍고, 반환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정의에 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예외적으로 부당이득 반환을 허용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계약 전면 무효는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빌려 사용했음에도 이미 받아서 사용해버린 돈까지 돌려받는 것은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최소한 원금은 반환돼야 ‘쓴 만큼은 갚는’ 거래의 안정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또 불법 추심은 계약 이행 방식의 문제일 뿐 계약 자체의 유효성과는 구별해야 하며 추심의 위법성만 문제 삼고 계약은 존속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방식에 위법성이 있다면 그 부분만 무효로 하면 충분하다는 시각이다.
이 같은 판결이 반복될 경우 일부 채무자가 의도적으로 ‘불법 이자나 추심’을 주장하며 원금 반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채무자의 일방 주장에 의해 계약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허윤 변호사는 “강요나 협박 등 심각한 침해가 수반된 경우 계약 전체를 무효로 보되, 대출에 공모했거나 상습적으로 채무를 회피한 경우에는 최소한 원금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며 “불법적 추심으로 고통받아온 피해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권리 행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움]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특별시의회 입법법률고문,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기획재정부 사무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