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은행권에는 ‘착한 금융의 역설’이 포착되고 있다. 연일 외치는 ‘상생 금융’이 주범이다. 상생금융은 코로나19 펜데믹에 이어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과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해 마련됐다.
지난 2023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을 연달아 방문해 상생금융 확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를 포함한 대규모 금융 지원 방안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시장금리와의 괴리를 유발시켜 부작용을 초래했다.
당시 은행 대출금리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1년 8월 직후 수준까지 내려갔다. 고금리로 줄었던 신규 가계대출은 1년 전의 두 배로 뛰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역대급 긴축을 예고했던 한은의 기조는 ‘말짱 도루묵’이 됐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자 당국은 은행을 압박했다. 주요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제한하거나 가산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수요를 억제했다. 이는 국민과 금융권 모두에 부담을 주며 시장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상생금융 시즌 2’가 나왔다. 지난해 말 은행권은 소득이나 신용도가 낮아 대출을 연체할 우려가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소상공인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매년 고정적으로 소상공인 지원 비용이 발생하도록 설계됐다. 은행권에서 상생금융 상시화를 우려하는 이유다. 은행의 고정비용 부담을 증가시키는 정례화는 수익성 저하와 주주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제는 정치권 개입으로 ‘정치 금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6대 은행장을 만나 상생금융을 논의했다. 이 대표는 “정치권이 금융기관을 돕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들어보려는 자리”라고 강조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체포·구속에 따른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유력 대권 주자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금융은 단순한 선의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시장 원리에 따라 돌아간다. 상생금융의 본래 취지인 취약계층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리한 압박은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와 이익 극대화라는 본질적 역할을 저해할 수 있다. 상생금융이 진정한 ‘상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은행 팔만 비틀 것이 아니라 시장의 논리에 기반을 둔 지속 가능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