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탄핵 인용·기각 떠나 신뢰 잃은 尹
‘反이재명’에 여론 반등 착각 말길
다른 사례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그릇된 교훈을 얻어 낭패를 겪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잘못된 교훈으로 인한 낭패는 국가를 도탄에 빠뜨릴 만큼 위험할 수 있다. 탄핵소추를 당한 윤석열 대통령, 그를 옹호하는 정치인과 극우 시위자들은 두 개의 앞선 사례로부터 그릇된 교훈을 얻은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례와 트럼프 재집권 사례가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2월 탄핵소추를 당한 후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의 인용 판결로 파면될 때까지 권한 행사가 정지된 자답게 근신하는 자세를 보였다. 마음을 비운 듯 지지층을 비롯한 외부와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탄핵 심판 과정이 조용했고, 탄핵 후 정국도 안정된 가운데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절차가 진행됐다. 윤 대통령 진영은 그렇게 소극적이어선 안 되겠다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은 듯하다. 탄핵 후 박 대통령 진영처럼 정치적 궤멸을 당하지 않으려면 근신보다 저항·투쟁 기조를 취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사례는 정면교사의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각종 개인적 사법 비리, 선거 결과 불복, 시민 폭동 선동 등의 혐의를 받았다. 그럼에도 근신은커녕 더 도전적인 자세로 반대편에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자기 성찰이나 반성은 없이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외쳤다. 사법 절차를 지연시키며, 핍박받는 정치적 희생양 코스프레를 했다. 그래도 작년 11월 선거 승리로 그의 모든 죄와 허물이 덮였다. 윤 대통령 옹호자들은 트럼프처럼 강하고 일관되게 우기고 버티면 이 고비를 넘겨 정치 풍향을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을 거라는 교훈을 얻었을 걸로 추측된다.
혹자는 이 두 사례로부터의 교훈이 유효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윤 대통령 측이 투쟁 기조로 탄핵정국을 시끄럽게 만드는 가운데 탄핵 반대 여론이 점차 커졌고, 국민의힘 지지도도 올라왔다. 고무된 극우 유튜버와 시위자들은 더 극렬히 대항하고 음모론마저 퍼뜨리며 탄핵정국을 난장판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처럼 기적적으로 부활하는 투사 윤석열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큰 판단 착오가 있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트럼프 사례들과 상황과 내용에서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전후 벌인 행동은 매우 구체적·가시적이었다. 명확히 입증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의 사법 과정상 우기며 버티기가 힘들다. 트럼프에 대한 복잡한 사법 절차와 달리 이번 탄핵 심판은 비교적 단순한 단심제로서 법정 기한이 있고 헌재 재판관들의 임기 문제도 있어 4월 전엔 매듭될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윤 대통령 친위 진영은 극렬히 저항했던 만큼 그에 비례해 정치적·사법적으로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설혹 탄핵이 기각돼도 윤 대통령은 트럼프처럼 부활하기보단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국민 눈에 비친 그의 리더십이 너무 무모·불안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는 냉철한 이성, 공감적 감성, 건전한 상식, 민주 의식, 책임감과 인품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중도적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에 대한 여론이 다소 반등한 건 민주당의 그악스러운 무리수에 대한 반감과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단기 반사이익일 뿐이다. 만약 조기 대선을 치를 필요가 없다면 보수층도 정권 재창출을 이끌 다른 인물을 찾아 결집하지, 정치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가 주는 그릇된 교훈을 조심해야 한다. 윤 대통령 측은 다른 맥락의 두 사례에서 얻은 그릇된 교훈으로 탄핵정국을 전쟁터로 만들어 사회를 어지럽히지 말고, 법치와 민주주의 원칙을 생각하며 정정당당하게 헌법적 사법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