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자사의 차세대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메모리 제조사에 미국 기업만 콕 집어 언급한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국내 주가가 들썩였다. 그간 단짝인 줄만 알았던 SK하이닉스 역시 그 순간만큼은 비운의 짝사랑이었다.
곧바로 토론의 장이 열렸다. 황 CEO가 우리 기업 길들이기에 나섰다느니, 정말로 우리 기업이 해당 칩을 만드는지 모르고 한 소리라느니 여러 의견이 난무했다. 논란이 심각해지자 황 CEO는 그다음 날 우리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파트너사 메모리가 탑재된다고 정정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가 제품에 들어가는 솔루션은 잘 모를 수 있다”며 애써 자위했다.
단순히 그 발언이 고의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우리 기업을 인식하는 그의 시선이 명백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고의였다면 이제 우리 기업을 완벽히 을(乙)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설령 고의가 아니었다면 큰 실수를 해도 한마디 정정 발언 정도면 충분할 정도로 다루기 쉬운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큰 무대에서 굳이 마이크론만 언급한 건 자신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우리가 샴페인을 빨리 터트렸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에 정상에 올랐다는 자신감에 장시간 취해있었다는 얘기다. 갑(甲)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기회와 동시에 위기도 찾아왔다. 기회를 잡기 위해 이제는 절치부심의 각오로 기술력 재건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