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통해 AI 칩 구매 막는 내용 예상
우리나라 기업들 타격 입을까…예의주시
거세지는 미‧중 전쟁, 정부 협상력 갖춰야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재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째 조치다. 중국이 다른 국가를 통해 인공지능(AI) 칩을 우회적으로 조달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이번 조치는 이러한 허점을 보완하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 제재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이 받게 될 영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는 이달 중 중국에 대해 추가 규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제3국을 통해 AI 칩을 들여오는 것을 막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중국과 연관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국제 거래에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2020년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중국 기업 화웨이가 미국산 장비로 제조된 반도체를 구매하지 못 하게 했다. 이 제재로 화웨이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와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올해 화웨이의 제품에서 TSMC의 반도체가 발견됐다. 7나노미터(㎚)의 초미세공정 제품이다. TSMC는 화웨이가 제재 대상이 아닌 다른 회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TSMC에 반도체를 위탁 생산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을 통해 미국의 AI 반도체에 우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미국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 정부는 그간 중국에 대한 제재 수위를 계속 올려 왔다. 이제는 AI 칩이 중국에 우회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까지 막기 위해 지역별 규제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대만의 시장 조사 전문 업체 트렌드포스도 “(미국 정부의) 새로운 AI 규정이 크리스마스 전에 발표될 가능성이 높고 두 강대국의 칩 전쟁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국으로의 AI 칩 수출 제한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체는 다른 매체를 인용해 “새로운 규정이 엄청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 기업에 이로 인한 여파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양국의 신경전이 심화하는 만큼 우리 정부가 협상력을 갖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한 대학교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당장 직접적인 타격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자생력이 강화되거나 미국의 주도권이 세지는 등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차기 정권과의 협상력을 갖추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년째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를 둘러싸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태까지는 미국의 일방적인 제재였으나, 최근에는 중국도 이에 반격하는 형태로 양상이 전개됐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가 발표되면, 중국은 반도체 핵심 원료 수출을 중단하는 식이다. 자국 기업들에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그간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하게 주장해온 만큼, 다음 달 트럼프 2기 정부가 꾸려지며 앞으로 두 나라의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양국의 제재가 예상치 못한 범위로 확대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향 반도체 수출이 막히는 것은 물론, 중국 현지에 설립된 반도체 공장들은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할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도 그 나라로 수출선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반도체 기업은 물론 협력 업체까지 이전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 현지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은 2일(현지시간) 대중 수출 규제 대상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을 포함했다. HBM 주요 제조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타격이 우려됐으나, 예상과 달리 비중이 낮아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