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래 기반 아닌 ‘CD금리’도 한계 분명
내년 ‘코파’로 지표금리 체계 변경 본격화
금리 예측가능성 커져 소비자 후생↑효과
최근 금융당국이 내년을 ‘지표금리 개혁의 해’로 삼기로 했습니다.
개혁의 핵심은 ‘무위험지표금리 코파(KOFR)의 확산’입니다. 현행 지표금리 체계를 코파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현행 지표금리가 무엇이길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일까요? 금융소비자에게는 무엇이 좋을까요? 지표금리와 코파의 정의부터 개혁의 배경까지 하나씩 살피겠습니다.
지표금리란 금융거래를 할 때 돈이나 금융상품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 되는 금리를 뜻합니다. 은행이 시장에서 양도가 가능한 정기예금증서(CD)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인 CD수익률, 환매조건부채권(RP)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발생하는 비용인 코파 금리 등이 있습니다.
코파 금리란 우리나라가 정한 무위험지표금리입니다. 국채와 통안증권을 담보로 하는 익일물 RP금리로, 초단기 금리라 실제 거래에 기반을 두고, 은행의 신용위험과 상관없습니다. 우리나라는 2021년 무위험지표금리인 코파를 중요 지표로 선정해 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약 3년 전 이미 ‘코파’가 우리나라 금융거래 지표금리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내년에서야 코파의 확산을 본격화하겠다고 한 것일까요?
2022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유동성 축소 과정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자산규모를 축소해 양적긴축을 실행했습니다. 기존 지표금리인 CD금리를 계속 사용하는 데 제약이 없고, 정책당국이 따로 코파 우선 사용 원칙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금융시장 안정’이 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코파 확산 속도가 느렸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입니다.
이후 지난해 대출 등 현물거래에서 코파의 직접적 활용실적이 아직 없다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났고, 올해 들어 코파 활성화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올 8월 정부와 한국은행은 코파 중심으로 지표금리 체계를 전환해 나간다는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그간 더디게 진행됐던 코파의 확산을 내년부터 본격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내년에 추진하기로 한 지표금리 개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파생상품시장에 코파를 확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채권시장에 정책금융기관, 은행권을 중심으로 코파 변동금리채권(FRN) 발행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파생상품시장 특히 이자율 스왑(IRS) 시장에서의 거래에서 코파 비중을 내년 7월부터 10%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이후 내년 10월 중 한국거래소를 통한 중앙청산 서비스를 개시해 금융사들이 코파 이자율 스왑 거래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정부와 한은은 코파 비중을 단계적으로 늘려 2030년까지 50% 이상으로 확대할 전망입니다.
또, 채권시장에서는 정책금융기관과 은행권을 중심으로 코파 변동금리채권 발행을 10%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은 내년 1조8000억 원을 발행하고, 여기에 은행권도 동참할 예정입니다. 연간 코파 변동금리채권 발행액은 내년 3조 원 내외, 중장기적으로는 4~5조 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당국은 내다봤습니다.
이처럼 지표금리 개혁을 꾀하게 된 배경은 '2012년 6월 리보(LIBOR)금리 조작사건'입니다.
리보금리는 런던 금융시장에 참가하는 주요 은행 간 자금거래 시 활용되는 호가 기반 산출금리입니다. 당시 리보금리를 호가하는 은행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금리를 불러 리보금리 수준을 왜곡한 게 영국과 미국 금융당국에 적발됐습니다. 국제 파생거래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며 ‘관행’으로 여겨졌던 리보금리는 담합사건을 계기로 신뢰성에 금이 갔습니다.
이에 금융안정위원회(FSB)등 국제기구는 지표금리의 떨어진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지표금리를 개선하고, 새로운 대체 지표금리를 개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때 ‘대체 지표금리’가 앞서 말한 ‘무위험지표금리’입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권고에 따라 기존 지표금리인 CD금리를 개선하고, 한국 무위험지표금리 코파를 선정하는 등 두 가지 방향으로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CD금리 개선과 코파 확산 이 두 가지 방향의 개혁을 하면 될 텐데,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는 지표금리 개혁안에 왜 CD금리 개선은 없을까요? CD수익률은 오랫동안 시장에서 파생상품 거래와 변동금리 자금조달 시 안정적으로 활용돼 왔고, 국내 금융권과 투자자에게 ‘관행’으로 자리 잡았는데 말입니다.
CD금리에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CD기초 거래량이 부족해 수익률 결정이 실거래가 아닌 전문가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됐습니다.
공대희 한은 금융시장국 공개시장부장은 부동산 시장에 빗대 문제점을 설명했습니다. 공 부장은 “아파트 매매가격이 실거래 가격이 아닌 일부 부동산 중개사들이 제시한 호가로 결정된다면 국민이 이를 공정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글로벌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거래보다 전문가 판단에 의존하는 CD수익률 중심의 국내 지표금리 체계와 실거래에 기반을 두는 해외 주요국 지표금리 체계 간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주요국과 방향성이 다르면, CD금리를 활용한 거래가 제한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미 해외 투자자들이 파생상품 거래 시 CD금리를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년 코파 확산을 위한 기반 마련과 점유율 확대가 이뤄지면 마지막 단계로 CD수익률이 중요지표에서 해제될 예정입니다. 이미 이달 한은과 금융위원회는 CD수익률의 대체 지표를 코파로 일원화하기로 합의했고, 곧 이 내용을 국제스왑파생상품협회(ISDA)에 통보해 표준계약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지표금리가 코파로 바뀌면 뭐가 좋을까요. 우선 불확실성이 줄어듭니다. 최근 비상계엄·탄핵정국에서 알 수 있듯 금융시장에서 ‘불확실성’은 가장 큰 리스크 입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시장참가자들이 갑작스러운 금리 변동에 타격을 심하게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된 이자율 스왑 시장에서 코파금리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자율 스왑은 정해진 기간마다 계약 당시 결정되는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교환하는 스왑계약을 뜻합니다. 주로 금리 변동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 시장에서 매일의 실제 거래에 따라 시장상황을 반영해 결정되는 코파를 지표금리로 사용하는 경우, 예상을 벗어난 가격변동 리스크가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한은 기준금리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그 상황을 바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기간에 적용되는 변동금리가 사전에 확정돼 갑작스러운 기준금리 변동을 반영할 수 없는 CD금리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대희 부장은 “이를 통해 기준금리 변화에 대한 시장 참가자 간 기대를 합리적으로 반영해 거래할 수 있다”며 “시장 전반적인 거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대출 상품 금리를 결정할 때도 코파 활용이 늘어나면 금융소비자의 후생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은행의 신용위험을 포함한 CD금리가 변동하면 그 리스크를 금융소비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코파는 말 그대로 ‘무위험’ 지표인 만큼 개별은행의 자금조달, 신용위험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은행이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코파 활성화로 글로벌 정합성이 높아지면 글로벌 투자자의 국내 금융거래도 자연스레 확대될 것입니다.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정책당국이 추진 중인 외환시장 구조 개선과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과 함께 코파 기반 금융거래 활성화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거래관행이 정착될 경우,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강화돼 글로벌 투자자의 국내 금융거래가 한층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표금리 개혁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게 금융권 중론입니다. 시장에서 형성된 관행을 바꾸는 작업인 탓입니다. 개별 금융사의 내부 프로세스, 인프라가 코파 활용 확대를 위한 방향으로 제대로 정비돼 있어야 합니다.
김 부위원장은 8월 말 ‘코파 콘퍼런스’ 연설문을 통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행을 바꾸려면 더 많은 소통과 설득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지표금리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 경영진과 트레이더 한분 한분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건 코파 기반 금융거래 활성화에 관한 정책당국의 의지가 강해 주도적으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또, 코파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한 금융기관과의 공감대도 형성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코파’ 확산이 금융소비자의 후생을 높인다고 하니 더욱 관심을 두고 우리나라 새로운 지표금리 체계로서 제대로 자리 잡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