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높아져…어음부도율도 '↑'
은행권의 기업대출 부실 우려가 높아진 것은 금융당국의 강도높은 가계대출 관리 조치로 수익성 확대에 발목이 잡히자 기업대출 유치 강화로 전략을 바꾼 것에서 시작된다. 주요 시중은행은 행장들이 직접 뛸 정도로 기업대출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가계대출로 구멍난 부분을 기업대출이 톡톡히 막아줬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 됐다. 경기둔화와 고금리·고환율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무너지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낼 수 없는 ‘좀비기업(한계기업)’과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탄핵 정국’은 가뜩이나 힘든 영세기업들에게는 ‘불난 데 기름부은 꼴’이 됐다. 한국경제의 뇌관 중 하나로 지목된 영세ㆍ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업이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29조5951억 원으로 전월 대비 7759억 원 급감했다. 기업대출 잔액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올해들어 처음이다. 특히 개인사업자 대출을 크게 줄였다. 같은달 기준 이들 은행의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잔액은 327조104억 원으로 전월과 비교해 2050억 원 축소됐다.
올해 3분기까지 기업대출 영업에 공을 들인 은행들이 여신 전략을 선회한 것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전 은행권의 중소기업 연체율은 0.65%로 지난해 같은기간(0.49%)보다 0.16%포인트(p) 상승했다.
부랴부랴 대출 문을 닫고 있지만 잔액은 불어날대로 불어난 상태다. 올해 1월 2조8000억 원 늘어난 기업대출 증가폭은 2월 6조5657억 원, 3월 8조4408억 원, 4월 10조8941억 원까지 폭증하며 정점을 찍었다.
문제는 탄핵 정국 이후 증시와 환율이 요동치면서 앞으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더 치솟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건전성이 우려되는 기업, 특히 영세·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주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은행권 중기여신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비율도 높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중소기업여신은 0.01%p 상승했다. 반면, 대기업 여신의 부실채권비율(0.43%)은 전분기 말 대비 0.01%p 내려갔다.
그나마 은행에 돈이라도 빌릴 수 있는 기업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한계기업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국의 어음부도율은 0.22%로 집 계됐다. 올 초만 하더라도 0.07%에 불과했던 어음부도율은 3월 0.27%까지 치솟았다. 이후 7월에는 다시 0.07%까지 떨어졌으나 8월 들어 다시 급격히 치솟기 시작하다 9월 0.21%까지 올랐다. 어음부도율은 기업 자기앞수표와 당좌수표, 약속어음 등 어음교환소에 회부된 전체 어음·수표 중 부도 처리된 금액의 비율을 뜻한다.
빚을 갚을 수 없어 파산하는 영세 기업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44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13건)보다 19% 늘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내외 악재로 회사채 금리가 올라가고 환율이 급등하는 데다 증시마저 불안한 상황”이라며 “은행 입장에서 자본적정성 관리를 위해 대출을 줄인다지만,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도산되거나 투자가 줄어 부실 기업이 많이 생기게 될 수 있어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