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생활고에 요절한 모차르트·고흐
발전 없는 정치 떠올라 안타까워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예술행위일 것이다. 음악, 미술, 연극, 춤과 여타의 다양한 공연예술 등 인간만이 만들고,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니 인간의 한 특징으로 삼아도 좋다는 생각이다. 선사시대에 남겨진 동굴벽화의 어떤 것들은 현대미술의 기준으로 보아도 예술성이 뛰어나다. 소위 인지혁명이라는 것이다. 예술적인 표현 욕구는 문명과 사회, 사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현대처럼 정당하게 높이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지금 최고의 찬사로 평가되는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쉽지 않은 삶을 살다간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 가운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있다. 모차르트는 1756년에 태어나 1791년까지 35세 짧은 생을 살고 갔다. 현대인의 평균수명에 비추어보면 나무나 아까운 요절이었다.
모차르트는 아마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가일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애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술의 가치를 아름다음에 둔다면 어찌 모차르트를 싫어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오죽하면 태교 음악으로 최고라는 것 아닌가. 초기 음악들을 들으면 약간의 매너리즘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곡한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짧은 생애에 그의 음악이 진화하는 과정은 그가 왜 천재인가를 문득 깨닫게 한다. 삶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들은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차르트의 말년은 비참하였다. 직장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였으며 호구지책으로 작곡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인에 관하여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궁핍한 생활을 돌파하느라 건강을 해쳐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장례식도 화려한 것이 못되었다. 12월의 불순한 날씨와 강추위 때문에 그의 가족은 최후 매장지까지 따라가지 않고 성문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문에 그가 누워 있는 곳은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그의 음악 애호가들이 방문하는 무덤에는 그의 유골이 없다.
모든 면에서 모차르트보다 훨씬 고단한 삶을 살다간 예술가가 빈센트 반 고흐일 것이다. 고흐는 1853년에 태어나 1890년에 총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한평생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경제적으로 그에게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신병과 궁핍으로 고통받고 있던 그의 정신세계는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에 쓰라리게 남아 있다. 그의 별과 해바라기가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위안을 생각할 때면 시간을 두고 이보다 더 큰 불평등이 있을 수 있는지 개탄하게 된다.
모차르트나 반 고흐가 살다간 환경이 그토록 고단했던 것은 소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표현의 욕구 때문에 환경이나 물불을 안 가리고 창작을 하지만 대중은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다. 호구지책이 바쁜데 예술의 가치를 평가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지금 모차르트나 반 고흐의 작품들이 받는 대우를 비교해보면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예술이고 뭐고 눈에 보이질 않는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님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예술을 평가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많은 분야가 그와 같은 성취에 걸맞은 발전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점점 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특히 작금에 돌아가는 이 나라의 정치를 보면 나라를 망가뜨리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다. 발전을 이루는 것은 지난하지만 망치는 것은 하루아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가? 수신제가, 살신성인, 선공후사의 지도자는 이 나라의 어디에 있는가? 참담한 2024년의 세모에 뜬금없이 모차르트와 반 고흐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