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는 '승진 거부'…이면에는 낡은 호봉제

입력 2024-11-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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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직 경력채용 관행에 내부 승진 경쟁 심화…승진해도 임금 큰 폭 변화 없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옷차림을 두껍게 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젊은 세대의 ‘승진 거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생활 균형을 중요시하는 인식 변화의 결과물로 해석되지만, 한국에서는 임금·승진체계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있다.

‘언보싱(unbossing)’으로 불리는 승진 거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기를 거치며 확산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의 연장선에 있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사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전제는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할 환경’인데, 승진은 이런 환경과 거리가 멀다.

승진 거부는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54.8%가 임원까지 승진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영국 등 해외에서도 사회현상으로 다뤄지는데, 대체로 코로나19 유행이 계기로 꼽힌다.

다만, 한국의 승진 거부에는 코로나19 유행보다 복잡한 배경이 얽혀있다.

대표적인 게 승진 경쟁 심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부노동시장을 보면, 과거에는 공개채용으로 입직해 일정 기간 근속하면 승진했다”며 “최근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관리직 등 경력채용이 일상화하면서 내부 승진 기회가 줄었다. 이런 변화에서 근로자들은 승진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하든가, 승진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제도 승진 욕구를 떨어뜨린다. 승진을 안 해도 호봉 누적, 임금단체협상을 통한 임금 인상으로 매년 월급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보직에는 그만한 책임이 부과되는데, 승진한다고 급여가 크게 오르는 게 아니다”라며 “승진을 안 해도 월급 인상과 정년이 보장되면서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건 합리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공직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복수 정부부처에 따르면, 최근 근무성적평정을 포기하고 위원회 등 외부기관에 파견을 신청하는 젊은 4·5급(서기관·사무관)이 늘고 있다. 5급 공채(행정고시) 출신들에게 빠른 승진은 빠른 퇴직을 의미한다. 정년까지 버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한 고위공무원 중 정년퇴직자는 9.3%에 불과했다. 자리 욕심이 아니라면 굳이 승진에 욕심낼 필요가 없다는 게 젊은 공무원들의 시각이다.

이런 현상이 장기간 지속하면 노동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위직급 적체는 그보다 낮은 직급의 승진을 가로막고, 신규 채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나마 이는 노동시장이 변화하는 흐름에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 교수는 “민간에서 근속연수보다는 직무, 직책의 중요성에 따라 급여를 차등하는 문화가 많이 확산했다”며 “승진이 비합리적 결정이 되는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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