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칼럼] 산유국의 꿈보다 중요한 것 ‘경제환경’

입력 2024-07-0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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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자유기업원 이사장

자원은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일 뿐
자유로운 기업활동서 혁신 활발해
법인·상속세 규제 깨 생산촉진해야

지난달 초에 영일만 앞바다에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수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다. 실제 경제성 있는 석유와 가스 생산 가능성을 확실하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연 1000억 달러 이상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는 우리로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발견된다면 우리는 산유국 반열에 오르게 되고, 천연자원이 풍부해져 우리 경제를 한층 더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크게 나아지게 하는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산유국이 되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의 경제환경이다. 석유와 가스의 발견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은 자유로운 경제환경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고 경제가 발전하는 데에 있어서 자원의 풍부함은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 사실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보면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매장량으로 보면 가난해지려야 가난해질 수 없는 국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어서다. 베네수엘라의 석유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10% 많고, 미국보다 10배나 더 많다. 그런데도 베네수엘라 1인당 GDP는 현재 1500달러에 불과하다. 매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인플레이션율은 6000%가 넘는다.

베네수엘라가 가난하고 실패한 국가가 된 것은 경제적 자유를 파괴하는 제도와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1975년 석유를 국유화하고, 석유 수출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각종 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국민의 환심을 사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 게다가 무분별하게 통화를 팽창시켰고 경제통제 정책을 대거 펼쳤다. 그 결과 경제는 쇠퇴하고 국민은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네덜란드 사례는 제도와 정책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워 준다. 네덜란드는 1959년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했다. 그러나 풍부한 천연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네덜란드 경제에 재앙이 되었다. 가스 수출로 수입이 증가하자 선심성 복지를 대폭 늘렸다. 갑작스러운 부의 증가로 경제가 붐을 이루면서 임금이 오르고 물가가 급등했다. 1980년대 주택 거품이 터지면서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다.

경제가 발전하며 국부가 증가해 국민이 잘살게 되기 위해서는 더 좋고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자원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자원은 스스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기업가가 자원을 생산과정에 투입해야 비로소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가치가 창출된다. 기업가가 자원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미래를 내다보고 기업을 설립하고, 기업을 통해 자기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업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때 가장 크게 고려되는 게 기업 환경이다. 자유로운 경제환경일수록 기업가의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 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더 낫고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된다. 경제발전과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에 자유로운 기업 환경이 중요한 까닭이다.

불행하게도 지난 수년간 우리 정부는 이와는 거리가 먼 경제환경을 만들어 왔다. 선심성 복지지출은 늘리면서, 주 52시간제를 포함한 경직적인 노동 관련 법령, 중대재해처벌법, 높은 법인세, 징벌적 상속세 등 기업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옥죄고 감시하는 법과 제도들을 만들었다. 2022년 74.5, 2023년 73.7, 2024년 73.1로 매년 하락하고 있는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는 우리의 기업 환경이 계속 악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려운 기업 환경 때문에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그로 인해 성장동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영일만 석유와 가스의 발견이 정말로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을 옥죄고 있는 법인세와 상속세를 포함해 경제 자유를 훼손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해 그것이 활발한 생산활동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환경 개선 없이 석유와 가스의 발견이 복지지출로 이어지면 네덜란드처럼 재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경제환경 개선은 산유국 여부와 관계 없이 실행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을 보면 암울하다.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정쟁에 매몰돼 있어서다. 부디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하고 국민을 위해 경제환경 개선에 애써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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