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재편·계열분리 나선 기업들…합치고 쪼개고 사고 팔고

입력 2024-06-23 12:00수정 2024-06-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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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필두 한국타이어·효성·GS·롯데·한화 등 ‘리밸런싱’
SK이노베이션·E&S 합병…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흡수합병
SK네트웍스, 스피드메이트·트레이딩 물적분할…효성, 2개 지주회사로 분할
SK렌터카 매각…두산밥캣은 모트롤 재인수

▲기업들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 도심의 모습. 연합뉴스

구부러진 것은 펴고, 끊어진 것은 잇는다.

SK그룹을 창업한 고(故) 최종건 회장은 1953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에서 선경직물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며 이같은 일성(一聲)을 내뱉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현재 SK그룹은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위해 구부러진 것은 펴고 끊어진 것은 잇는 ‘리밸런싱’ 작업에 한창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하고, SK네트웍스에서 스피드메이트와 트레이딩을 물적분할하기로 했다. SK어스온은 페루 LNG 지분을 매각했고, SK스퀘어는 크래프톤 지분 전량을 시간외매매(블록딜)로 정리했다. SK렌터카는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에 매각하기로 했다.

SK를 비롯해 현대백화점·한국타이어·신세계·효성 등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합치고 쪼개며 사업재편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글로벌 경영환경 악화 등으로 경영 전망이 급변하면서 효율성 제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은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 분할을 통한 사업 전문화 등 경쟁력 강화로 경영환경 변화를 돌파한다는 구상이다.

뭉쳐야 산다 ‘합병’으로 시너지

SK이노베이션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SK E&S와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20일 공시했다. 양사가 합병하게 되면 자산규모는 106조 원에 달하게 된다. SK그룹은 이달 말 경영전략회의에서 두 회사의 합병 계획을 승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양사를 합병해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부터 신재생에너지까지 아우르는 초대형 에너지 기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석유화학·윤활유 등 석유를 기반으로 한 민간 에너지 기업이다. SK E&S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태양광·풍력·수소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SK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 SK온과 SK E&S의 발전 자회사 및 LNG판매사업을 합병하는 방안도 추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현대백화점은 경영효율성 제고를 위해 완전 자회사 현대홈쇼핑을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쇼핑의 발행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번 합병 완료 후 현대쇼핑은 해산하게 된다. 회사 측은 “합병으로 기업구조가 단순화돼 경영 효율성이 제고될 것”이라며 “현대쇼핑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약 600억 원)과 자산이 유입돼 재무구조도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원F&B도 온라인 사업 부문 자회사인 동원디어푸드를 흡수합병한다. 합병 후 동원디어푸드는 소멸하고 동원F&B가 모든 지위를 승계하며 사명은 동원F&B로 유지된다. 동원F&B 관계자는 “최근 유통업계 온오프라인 통합 트렌드에 맞춰 동원F&B도 시너지를 내기 위해 온라인 사업 부문의 흡수합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자회사인 이마트에브리데이와 다음 달 합병을 앞두고 있다. 계열사간 경영자원 통합으로 매입 규모를 확대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두 회사가 보유한 물류센터를 함께 활용해 경영 효율화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한국타이어는 사모펀드(PE) 운용사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 보유 지분 25%와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신주 12.2%를 총 1조 733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분할’로 사업 독립성 강화

한편에선 계열사 쪼개기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형제의 난’을 겪은 효성그룹은 이달 임시 주주총회에서 2개의 지주회사로 분할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기존 지주사인 효성은 장남 조현준 회장이 맡고, 또 다른 지주사인 HS효성은 삼남 조현상 부회장이 맡게 된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으로 효성 0.82 대 HS효성 0.18이다. 업계는 향후 지분 정리 등을 통해 계열 분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한다.

SK네트웍스는 이달 이사회에서 자동차 관리 사업 부문인 스피드메이트와 무역을 담당하는 트레이딩을 물적분할해 분사하기로 의결했다. 8월 임시 주총을 거쳐 스피드메이트 사업부는 9월, 트레이딩 사업부는 12월 각각 새로운 법인으로 출범한다. SK네트웍스는 “미래 성장 전략에 따라 전사적인 인공지능(AI) 기반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자회사들의 장기 성장을 돕기 위해 분사를 결정했다”며 “자회사들은 독립적 의결체계 속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사업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GS리테일은 이달 초 호텔 사업부의 인적 분할 결정을 공시했다. GS리테일은 존속법인 GS리테일과 신설법인 파르나스홀딩스로 나누어질 예정이다. 분할 기일은 올해 12월 26일, 존속과 신설법인의 재상장일은 내년 1월 16일이다.

돈 되는 건 다 ‘팔아라’…돈 벌어오는 건 ‘사라’

기업들은 지분과 자산을 매각해 현금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자회사 SK렌터카 지분 100%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 원에 양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4월 말 자회사 SK어스온이 2010년부터 운영해 온 페루 LNG 지분 20%를 2억5660만 달러(약 3500억 원)에 매각했다. 같은달 SK스퀘어는 크래프톤 지분 2.2% 전량을 블록딜로 처분해 약 26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대규모 생산기지인 롯데케미칼타이칸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LG디스플레이는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LG유플러스에 경기 파주시 일대 토지와 건물을 매도하는 한편, 중국 광저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IT 소재 사업부 내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을 약 1조1000억 원에 중국기업에 매각했고, 여수 나프타분해설비 2공장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한화는 모멘텀 사업 물적분할, 해상풍력 및 플랜트사업 한화오션으로 양도, 태양광장비제조전문 한화솔루션으로 양도하는 사업구조 개편안을 밝혔다.

기업인수도 주요 전략이다. 한화는 호주 조선·방산 기업 오스탈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을 준비중인 여행 플랫폼 기업 야놀자는 국내 1위 여행사 하나투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주요국가 14곳 중 미국의 승인만 남겨두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두산밥캣은 과거 두산그룹사였다가 매각된 중장비용 유압부품 전문기업 모트롤을 2460억 원에 다시 인수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몸집이 커진 대기업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지만,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는 ‘머물러 있으면 도태된다’는 의식이 강해졌다”며 “기업 합병과 분할, 매각, 인수가 그 어느 때보다 경영계의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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