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승자 없는 T커머스 ‘땅따먹기’

입력 2024-06-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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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부 유승호 기자

네모난 사각형 공간 속에 1~8 숫자가 쓰인 구역이 있다. 최종 8단, 꼭대기에 오르면 돌을 던져 내 땅을 확보한다. 어릴 적 한 번쯤 해봤을 추억의 놀이 사방치기다. 사방치기는 흔히 ‘땅따먹기’라 부르기도 한다. 한정된 공간 속에 돌을 던져 내 땅을 확보하는 이 게임이 최근 T커머스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채널 신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12차 국민통합위 전체 회의 겸 성과보고회에서 소상공인을 위한 T커머스 채널 신설을 제안했다. 소상공인 전용 T커머스를 통해 이들의 판로를 넓히고 생산성도 높이겠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도 제22대 총선 공약집에 T커머스 신설을 공약했다.

T커머스 신설 움직임에 홈쇼핑업계는 난색이 역력하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홈쇼핑 업황이 매우 악화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할 경우 송출수수료 문제 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다. 특히 TV홈쇼핑업계보다 업황이 더 좋지 않은 T커머스업계의 우려가 더욱 크다.

데이터홈쇼핑업계에 따르면 작년 데이터홈쇼핑 단독사업자(SK스토아·KT알파쇼핑·신세계라이브쇼핑·W쇼핑·쇼핑엔티)의 매출액은 1조1574억 원으로 전년 대비 6.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83억 원으로 52.2% 급감했다. 이들의 취급액 역시 2.4% 떨어졌다. T커머스 시장은 쪼그라드는데, 신규 채널 진출 소식에 ‘땅따먹기’라는 볼멘소리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신설보다 기존 T커머스를 활용하는 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T커머스 10개 채널은 사업 재승인 조건에 맞춰 중소기업 제품을 의무적으로 70% 이상 편성 중이다. 의무편성 비율이 낮지 않은 만큼 기존 T커머스만으로도 소상공인·중소기업 판로 확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소상공인 상품 판매를 확대할 경우 T커머스의 규제를 풀어주는 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T커머스는 TV를 통해 상품을 결제·구매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TV홈쇼핑과 비슷하다. 하지만 데이터 기반 전자상거래다 보니 전체 화면의 50% 이상을 데이터로 구성해야 하고 녹화방송만 허용해야 한다. 최근에 신세계라이브쇼핑이 방송화면을 자동으로 확대하는 예약 서비스를 도입했다가 화면 비율 규제 위반이라는 이유로 서비스 제공을 철회한 것도 이 때문이다.

T커머스 신규 채널 입장에선 당장 새로운 매출이 발생할지 모른다. 하지만 업황은 이미 내리막길이다. TV를 보지 않는 이른바 코드커팅도 심화해 미래는 어둡다. TV 채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T커머스업계는 지금 생존기로다. 땅따먹기의 결말이 ‘공멸’이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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