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 전 잔금 못 받았어도…대법 “집주인, 매매계약 해제 못해”
‘실거주’ 목적 매수인, 잔금 지급 거절
매도인, 잔금불이행 이유로 인도 거부
大法 “현실인도 곤란한 사정변경 생겨”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나가겠다던 세입자가 ‘2년 더 살겠다’며 기존 계약 갱신을 요구하면서 주택 매매계약이 틀어졌을 때, 매수인이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매수인의 잔금 지급 거절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이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매수인 A 씨가 매도인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이전 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잔금 지급의무 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피고의 계약 해제 항변이 이유 있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라고 1일 밝혔다.
A 씨는 집 주인 B 씨와 문제가 된 아파트를 11억 원에 매입하겠다는 매매계약을 맺으면서 계약서상 부동산 인도일 및 잔금 지급일을 2021년 4월 22일로, 특약 사항으로 실제 명도는 2021년 12월 6일에 각각 한다고 정했다.
해당 아파트에는 2021년 10월 19일까지 거주하기로 임대차 계약한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매매계약 당시 임차인은 매수인 A 씨에게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A 씨는 이 사실을 현 임차인과 직접 통화해 확인까지 했다.
하지만 임차인은 잔금 지급일 직전 갑자기 갱신요구권을 행사하며 “2년 더 거주하겠다”고 통보했다. 실거주할 목적으로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했던 A 씨는 B 씨에게 잔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집 주인 B 씨는 A 씨가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해제 의사를 표시했다.
재판에서는 아파트 매매계약서에 인도일과 실제 명도일 약정이 별도로 있는 경우 매도인의 현실 인도 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 피고는 원고에게 잔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소유권이전 등기절차를 이행해야 한다고 봤다. 반면 2심은 피고가 패소한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의 잔금 지급 의무 이행 거절은 부당하다면서 피고의 계약 해제는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계약서상 형식적인 문구에만 얽매여서는 안 되고 쌍방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가를 탐구해야 한다”면서 “상대방의 이행을 받을 수 없는 사정 변경이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당초 계약 내용에 따른 선이행 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로 평가했다.
특히 대법원은 “상대방의 이행이 확실하게 될 때까지 선이행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며 “사정 변경은 피고의 해제권 행사 시까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매매계약 문언 해석상 쌍방이 피고의 현실 인도 의무 이행일은 2021년 12월 6일로 하되 임차인에 대한 아파트 반환청구권 양도에 의한 간접점유 이전 의무는 그보다 앞서 2021년 4월 22일 잔금 지급, 소유권 이전 등기 의무 이행과 함께 이행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면서 피고의 현실 인도 의무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정 변경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의 잔금 지급의무 이행 거절이 정당한 것은 아닌지, 그 결과 피고의 계약 해제권 행사에 문제는 없는지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매매계약 해석상 매도인에게 현실 인도 의무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매수인의 잔금 지급 의무 이행 거절이 정당하다’ 볼 여지가 있어, 그 잔금 지급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매도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건 적법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