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법저법]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지금이라도 신고 가능할까요?”

입력 2023-1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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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뒤 가해자 신고 절차는…

최형근 법무법인 오라클 변호사

법조 기자들이 모여 우리 생활의 법률 상식을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가사, 부동산, 소액 민사 등 분야에서 생활경제 중심으로 소소하지만 막상 맞닥트리면 당황할 수 있는 사건들, 이런 내용으로도 상담받을 수 있을까 싶은 다소 엉뚱한 주제도 기존 판례와 법리를 비교·분석하면서 재미있게 풀어드립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수개월간 지속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견디기 어려워 퇴사를 했습니다. 저는 비록 2차 가해가 두려워 퇴사했지만 추가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해자는 그 행위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퇴사 후에도 가해자에 대한 신고나 그에 따른 징계가 가능한가요?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발생 시 대처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회사나 노동청, 또는 경찰에도 신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앞서 짚어봤습니다([이법저법] 잘 하라는 조언이었는데…“선배,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 그런데 피해자가 퇴사한 뒤에 신고를 해도 효력이 있을까요? 그때의 사건들을 전 직장 동료들에게 알리는 건 문제가 없을까요? 노무 사건을 주로 다루는 최형근 법무법인 오라클 변호사에게 명쾌한 답을 들어봤습니다.

Q. 퇴사 후에도 가해자에 대한 신고가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피해자가 퇴사한 이후라고 하더라도 피해사실을 신고할 수 있고 신고를 접수한 회사는 피해자와 재직 중인 경우와 동일하게 근로기준법 및 취업규칙 등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조사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는 기한이 없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신고할 수 있습니다.

Q. 퇴사 후 신고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나요.

A. 퇴사자라고 하더라도 재직자와 마찬가지로 회사 또는 고용노동부(관할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진정)가 가능합니다. 회사로 신고한 경우, 회사는 조사절차를 거쳐 조사결과에 따라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Q. 제가 퇴사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A. 노동청에도 진정할 수 있습니다. 진정이 접수되면 노동청은 회사에 대해 ‘개선지도’ 공문을 발송해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합니다. 노동청은 회사의 조사절차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회사에 대하여 시정권고를 하거나 직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Q. 회사의 조사 결과 및 조치내용을 봤습니다. 제가 이미 퇴사해서 그런 걸까요? 제대로 된 조사나 징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A. 회사의 조사 절차나 결과나 조치내용 등에 이의가 있다면 피해자는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청은 회사에 개선지도 및 이행 결과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게 되죠. 그럼에도 회사의 조사가 부당한 경우, 직권으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노동청 진정 외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소, 가해자 및 회사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Q.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의 피해내용을 전 직장 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혹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을까요?

A.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퇴사 후 다수의 직원들에게 피해사실 및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희망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한 사건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 이메일은 피고인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했다. 따라서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한 피고인의 주된 동기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설령 부수적으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 전보인사에 대한 불만 등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뉴시스)

고등법원에서는 이메일을 발송한 성희롱 피해자가 유죄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주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일부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더라도 ‘비방의 목적’은 없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피해사실과 함께 향후 유사한 문제를 방지하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기재하고 전 직장 동료들을 한정하고 이메일 등을 발송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구체적인 이메일의 내용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법률전문가의 상담을 받은 후에 발송하는 것을 권합니다.

법률 자문해 주신 분…

▲ 최형근 법무법인 오라클 변호사

최형근 변호사는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전문 석사학위를 취득(수석 졸업), 제5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법무법인 오라클의 파트너 변호사로서 공인노무사 자격과 업무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인사노무 분야의 소송 및 자문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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