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37. 폴란드 리더십의 한계

입력 2023-10-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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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우크라 지원중단’ 선언
집권당 지지기반인 농민票心이 변수

‘폴란드 리더십은 여기까지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전방에 서 오던 폴란드가 이달 15일 총선을 앞두고 기존 정책을 갑작스럽게 바꿨다. 우크라이나에 기존 공약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를 두고 두 나라는 무역 분쟁 중이다. 폴란드는 왜 갑자기 이렇게 정책을 변경했을까?

폴란드·발트3국, 對러 강경책 주도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후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대러시아 강경정책을 주도했다. 2차대전 후 소련의 압제를 겪었던 이들 나라는 러시아의 푸틴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다. 반면에 독일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에 더욱 의존하며 이런 상호의존이 푸틴의 모험적 행동을 줄일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후 독일은 외교정책의 극적 전환을 발표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고 푸틴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에 강경 대응하기에 이르렀다.

폴란드는 전쟁발발 후 자신들의 러시아 진단이 정확했다며 대러시아 제재를 주도해왔고 18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했다. 발트 3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폴란드의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지난달 20일 우크라이나에 기존에 공약한 무기를 공급하고 더 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U 내 극우정당 지지도 꾸준히 올라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럽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한 폴란드가 대외적인 이미지와 명성에 금이 가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경 방침으로 급변한 것은 오는 15일 총선 때문이다.

법과정의당(PiS)은 2015년부터 집권해 왔고 이번에 3연승을 노린다. 지난달 20일 ‘폴리티코.EU’(Politico.eu)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여당인 법과정의당의 지지율(38%)이 야당인 ‘시민연정’보다 9%포인트 높다. PiS는 민족주의적 포퓰리스트 정당인데 더 극우적인 자유와독립연맹당(연맹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맹당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한다. 따라서 연맹당을 견제하고 지지층을 단단히 묶어두기 위해 이런 극단적인 정책 변화를 표명했다. 연맹당은 10% 지지를 얻고 있다.

법과정의당의 주요 지지층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 지역 거주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폴란드가 왜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금지에 그렇게 사활을 걸고 있는지가 이해된다.

문제는 아무리 국내 총선용 정책과 발언이라지만 그 여파가 너무 크다는 것. 내년 6월 초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에서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계속 오르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대러시아 강경정책 선봉에 섰던 폴란드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침략전쟁에 맞서 자유의 투사가 된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울고 싶은 사람의 뺌을 때려준 격으로 극우 정당에는 호재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폴란드의 이런 입장선회는 푸틴을 도와주는 셈이라고 일격을 날렸다. 푸틴은 미국과 유럽의 분열을 노리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푸틴이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폴란드에서 이런 분열이 처음 나왔으니 말이다.

이런 정책 선회에다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곡물의 수입을 일방적으로 금지하자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20일 폴란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EU는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로의 우크라이나 곡물의 무관세 수출을 허용했다. 값싼 우크라이나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 씨 때문에 손실을 본 이곳의 농부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할 수 없이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 5월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에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입 금지를 잠정 허용했다.

이 금지가 지난달 15일 만료돼 이들 5개국은 또다시 값싼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에 노출됐다. 우크라이나는 수출업자에게 허가증을 받게 하는 등 자발적인 수출 제한을 제시했지만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일방적으로 수입을 재금지했다.

EU 회원국의 농민을 지원하는 공동농업정책은 회원국이 아니라 집행위원회의 권한이다. 즉 폴란드를 비롯해 5개 국가가 일방적으로 수입을 금지할 수도, 농민을 지원할 수도 없다. 슬로바키아는 며칠 뒤 수입 금지를 해제했지만 폴란드는 불법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

▲폴란드 동부 도로후스크에서 우크라이나의 곡물 유입에 반대하는 농부들이 국경 근처 도로를 차단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産 곡물수입 금지로 분쟁 악화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이 조약 등의 법을 위반하면 시정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EU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 폴란드가 법을 위반했기에 집행위원회는 폴란드에 최근 시정을 요구했다. 또 WTO에서 우크라이나와 협의 절차를 개시했다.

국제무대에서 통상정책도 EU 집행위원회가 행사한다. EU 법과 WTO의 통상 규범을 위반한 폴란드와 헝가리를 대변해야 하는 EU의 입장이 참 난처하다.

지난 36회 ‘유러피언 드림’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가능 여부를 진단했다. 여기서 ‘폴란드가 양보할 수 있을까?’를 제시했는데 이번 분쟁에서 보듯이 쉽지 않다. 농민 비중이 높고 이들이 주요 지지층인 주요 정당이 버티고 있는데 우크라이나를 위해 최소 몇천억 원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까? opinion@etoday.co.kr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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