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고마워, 미안해"…'임종체험'서 쏟아진 말들 [해피엔딩 장례]

입력 2023-09-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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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1. 임종체험을 통해 깨닫는 삶의 소중함

2~3분 입관체험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
교보생명 신입직원들 임종체험 연수 "이제라도 나에게 잘해줄래"
정용문 센터장 "임종체험은 삶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

▲7월 13일 충남 천안 백석웰다잉힐링센터에서 진행된 임종체험에 참가한 교보생명 직원들과 일반인들이 입관하고 있는 모습. (사진=송석주 기자)

많은 영화와 문학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은 폭우나 낙화(落花)로 상징된다. 주로 폭우가 비극·슬픔을 극대화하는 장치라면, 낙화는 삶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장치다. 임종 체험을 위해 영등포역에서 천안행 열차에 몸을 실었던 7월 13일에는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 '가상의 죽음'을 경험하러 가는 길에도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클리셰(cliche)가 연출됐다.

충청남도 천안시에 소재한 백석웰다잉힐링센터에는 죽음을 '체험'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용문 백석웰다잉센터장은 이곳을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을 치유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장례지도사로 활동했던 정 센터장은 현재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업무 중인 정용문 백석웰다잉센터장 (사진=송석주 기자)

정 센터장은 도박 중독에 걸린 남편과 함께 온 한 중년 여성을 기억에 남는 체험자로 꼽았다. 그는 "부부가 온갖 방법을 써도 도박을 끊을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체험 중에 남편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부인에게 사죄했다. 이렇듯 임종체험은 단순히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걸 넘어 삶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린 자식을 보낸 부모를 보는 일은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져서 가슴이 참 아프다"고 덧붙였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죽음 앞두고서야 쏟아낸 말들

거센 비바람에도 이날 센터에는 방문객들이 적지 않았다. 교보생명 신입 직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임직원들의 생명 보험 가치를 고취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체험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교보생명 신입 직원 30여 명은 일반인 참가자와 함께 정 센터장의 사전 교육을 들은 뒤 본격적인 임종체험에 들어갔다.

체험의 첫 번째 순서는 '영정사진 촬영'이다. 20대 초중반의 신입 직원들은 서로의 영정사진을 보며 "실물보다 영정사진이 더 낫다" 등 농담을 주고받으며 해맑게 웃었다. 이때까진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각자의 영정사진을 받아든 이들은 입관 체험을 위해 센터 내 강당으로 이동했다. 수의를 입은 뒤 촛불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했다. 정 센터장은 무작위로 마이크를 주면서 유언장을 읽게 했다.

유난히 쾌활해 보였던 신입 직원 A 씨는 "아빠"라고 말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유언을 다 읽지 못했다.

같은 회사 직원 B 씨는 "엄마, 매일 방 청소 안 해서 미안해. 나 없다고 너무 많이 울지 말고, 잘 지내요. 아빠, 너무 친근하고 다정한 아빠여서 고마웠어요. 가장의 무게를 덜어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해요"라면서 내내 떨리는 목소리로 유언장을 읽어나갔다.

유언장 읽기 순서가 끝나자 정 센터장은 "안타깝지만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다 됐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라. 여러분 옆에 있는 관으로 들어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입관 체험용 관은 안전을 위해 사방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관에 들어간 시간은 고작 2~3분이었지만 긴 침묵의 시간이었다. 울음을 터트린 참가자도 있었다. 입관 체험이 끝나자 정 센터장은 "이제 여러분에게 새 삶이 주어졌다"며 제2의 인생 시작을 알렸다.

▲7월 13일 충남 천안 백석웰다잉힐링센터에서 참가자들이 임종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송석주 기자)

"살아야 할 이유 느끼고 싶어서 왔다"

혼자 센터를 방문한 김미정(30·여) 씨는 "직장 내 스트레스로 극단적 생각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남들보다 빨리 승진했다. 그 과정에서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힘들어진 게 불과 6개월 전"이라고 말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주변인들의 반응이었다. 하소연했지만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네가 나약한 거 같은데", "배부른 소리 하네", "네가 질투 나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등 지인과 동료들의 반응은 김 씨를 더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니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게 됐다. 김 씨는 "너무 죽고 싶어서 오히려 내가 살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임종체험이라는 걸 알았다"며 "유튜브 영상으로 봤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진짜로 죽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우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 정도는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느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근데 임종 체험을 통해 나를 객관화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 떨어져서 날 보게 됐다"며 "가족들을 챙긴다고 날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산 것 같다. 이제라도 나에게 잘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유언장을 쓸 때 눈물이 많이 났다고 했다. 기자의 부탁에 그는 흔쾌히 자신의 유언장을 보여주었다.

내가 인생을 잘 살아온 걸까? 나는 그렇다고 얘기를 못 하겠어.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았거든. 너무 잘 살고 싶었기 때문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도 못 하고 산 거 같아. 나에게 한 번의 생이 더 주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런 행운이 올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다시 우리 가족 그리고 오빠를 만났으면 좋겠다. (중략) 마지막으로 나 잘살았다고 한 번씩만 얘기해줘. 그러면 진짜 아무 여한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아. (중략) 사랑해. 나는 정말 행복했어. 더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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