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채 투자 급증 주목…금리 차익보다 퇴직연금 등 안전자산 선호 강화”
“美 연준, 내년 1분기 금리 인하 예상…한미 금리차 등 민감한 시기”
“올해 개인들의 채권 투자는 작년과는 다른 흐름입니다. 금리가 올라도 꾸준히 사는 이런 식의 투자는 그동안 안 보였던 투자거든요. 단타를 노리기보다 퇴직연금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장기보유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개미(개인투자자)들의 올해 채권 순매수액이 25조 원을 돌파하자 한수일 NH아문디자산운용 채권운용부문장(CIO)은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0조5000억 원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995년 국민은행에서 금융권에 첫발을 내딛은 한 부문장은 2001년 삼성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7년간 채권운용 경력을 쌓았다. 2008년부터 글로벌 투자은행(IB) 메릴린치은행, 맥쿼리은행 등에 합류해 이자율 트레이딩 운용업무도 함께 맡기 시작했다. 현재는 NH아문디자산운용의 채권운용본부장을 맡아 8년째 본부를 이끌고 있다.
한 부문장은 “개인 채권 투자의 작년과 다른 특징은 장기채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작년에는 특판 비슷하게 10개월, 1년짜리 카드채, 캐피탈채, 한전채를 튀는 금리에 사람들이 혹해서 샀다면, 올해는 개인들의 채권 투자 경험이 좀 쌓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 투자 흐름이 금리 차익보다는 퇴직연금과 같은 안전자산 선호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한 부문장은 “실제로 숫자를 보면 국채 장기물들을 많이 사고 있다. 시장을 길게보고 퇴직연금처럼 국채를 장기보유하려는 것”이라며 “연기금이나 주요 금융기관의 채권투자가 줄어드는 점과 비교된다”라고 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5일까지 개인들이 사들인 국고채는 9조14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순매수액(1조63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부문장은 “향후 우리나라의 중장기 금리 수준과 비교해도 지금 금리가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심증이 확산하는 모습”이라며 “올해까지는 오래동안 기다리며 매집하는 기간이었으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평가이익 실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조언했다.
향후 경제성장률 흐름을 살펴봐도 현재 수준의 금리가 재현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뚜렷하다. 한국 경제의 체력이 공격적 금리 인상을 버텨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바라보는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약 2%)마저 아래인 1%대가 우세하다. ‘상저하고’로 반등을 예상했던 내년 성장률마저 현실화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중국발 부동산 리스크와 함께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추가적인 리스크도 남아있다. 국내 금융기관의 중국 부동산 개발기업에 대한 익스포저(노출 위험)은 대략 40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국내 채권시장에 중국 리스크가 경기 부진과 물가상승 두 갈래로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입지까지 축소할 수 있다.
그는 “위안화 약세에 따른 원화의 동반 약세로 인한 국내 물가 상승, 이로부터 발생하는 추가 통화긴축 가능성은 국내 부동산 시장을 포함한 내수시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또한 중국으로부터의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격한 이탈 상황이 벌어질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한 이머징마켓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경기 회복의 주요 동력으로 중국발 수출을 삼고 있는 우리 경제에서 수출 타격에 따른 향후 경제성장률 추가 하향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 호조도 국내 긴축적 통화정책을 장기화시키는 요소다. 한 부문장은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 감소로 개인소비 여력이 감소하고 있는 점도 향후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먼저 인하에 나선 후에 따라 시작할 것으로 봤다. 한 부문장이 예상하는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은 내년 1분기다. 그는 “코로나19의 과도한 재정 완화 후유증을 겪는 현재는 중국 부동산 리스크, 원화 약세, 한미 금리 차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고 했다.
국내 채권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수요는 꾸준히 뒷받침된다는 관측이다. 중국발 경기침체가 시스템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고, 한국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이 OECD 선진국 중에서도 50% 이하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기준 외국인의 원화채권 투자잔고는 243조 원으로 연초 대비 15조 원가량 증가했다.
한 부문장은 “오히려 외국인의 국채 채권 투자 메리트가 상승해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시장은 채권시장에서 메리트가 있는 시장이다. 국가 신용등급도 AA이며, 정부가 미국과 달리 국채 발행을 줄이고 있어서 수급도 국채에 유리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채가) 외국인들에게는 중국이 사고만 안 치면 굉장히 매력적인 채권”이라며 “결국 경기사이클상의 일반적인 경기 둔화 국면에서 벗어나 펀더멘탈상 심한 훼손이 발생하는 국면이 도래하느냐가 중요하다. 최근의 안정적 한국 CDS 프리미엄 추이를 볼 때, 그러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고 했다.
특히 내년 3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확실시되면, 외국인들의 국채 매수 규모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WGBI 가입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잠재적 외국 자금은 약 93조 원(700억 달러)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외국인투자자들의 국채 거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최대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인 유로클리어에 이어 지난달 클리어스트림과 국채통합계좌 구축·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채권 시장의 수급과 관련해서는 “수요측면에서 각종 연기금들의 자금 압박, 증권사 랩·신탁 비즈니스 둔화 등으로 인해 예년보다 약해진 느낌”이라며 “한국전력의 경영상태가 개선되고, 발행량이 줄어들면서 공사채 수급 안정, 크레딧 채권 안정으로 공급상의 문제가 터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