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느닷없이 접는 ‘50년 주담대’ 가판대

입력 2023-08-22 05:00수정 2023-08-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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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내놓았던 NH농협은행이 이달 말 갑작스레 판매 창구를 닫는다고 한다. 새 상품을 진열한 가판대를 두 달도 안 돼 접는 셈이다. 가판대를 서둘러 접는 것은 우연한 선택이나 변덕이 아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필연적 결과다.

앞서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계대출 증가 원인으로 지목했다. 관리 강화 계획도 내놓았다. 분별도 없고 눈치도 없이 50년 주담대 판매 경쟁에 나선 시중은행권에 당국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자 농협이 가판대를 접겠다고 나선 것이다.

50년 주담대를 출시한 시중은행은 농협만이 아니다. 농협에 이어 하나은행이 지난달 7일, 국민은행이 14일, 신한은행이 26일 같은 내용의 상품을 출시했다. 이달 14일엔 우리은행도 가세했다. 농협과 경쟁하던 다른 시중은행들은 철시에도 한발 늦었다. 고민이 클 것이다. 같은 상품을 덩달아 내놓은 일부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등도 머리가 아프게 마련이다.

50년 주담대 가판대가 단 두 달 만에 접히는 현실을 두고 ‘관치 금융’ 논란이 일지 않는다면 그것이 외려 이상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담을 무릅쓰고 당국이 찬물 바가지를 들고 나선 것은 50년 만기 상품의 특성이 워낙 고약해서다. 50년 주담대는 만기가 불합리하게 길어 대출 한도를 늘리는 부수효과를 낼 수 있다. 가계부채를 조율하는 주요 수단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무력화하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중은행이 앞다퉈 내놓은 대다수 상품에 연령제한도 없어 50~60대도 대출받을 수 있게 되면서 모럴해저드 문제까지 제기됐다.

50년 주담대가 가계부채 악화를 부추겼다는 통계 수치는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8월 들어 5대 은행 주담대가 1조2299억 원 늘었다는 통계도 그 중 하나다. 그런 만큼 당국이 50년 주담대가 부를 잠재적 폐해를 조기에 차단하고 나선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심각성으로 미루어 볼 때 당국이 근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주도하는 통화 긴축 기조를 방해하는 과도한 금융 개입을 일삼다 인제 와서 시중은행과 50년 주담대를 원흉으로 모는 일방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올해 들어 다주택자와 임대·매매사업자의 규제 지역 내 주담대를 허용한 데 이어,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특례보금자리론를 출시했다. 상생금융을 내세운 대출금리 인하 압박 조치도 취했다. 금융당국 책임자들이 앞장섰으니 스스로 그 결과를 잘 알 것이다. 모두 시장 심리에 뜨겁게 부채질을 한 조치였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올 1분기 중 1800조 원을 넘어섰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102.2%에 달해 조사 대상 34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가장 취약한 고리라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도 과도하게 부채질을 한 뒤에 시중은행과 50년 주담대만 문제 삼고, 그것으로 할 일을 다한 척하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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