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 세트 촬영 노하우 없어 ‘고생’
“도전 두렵지만 성공 재탕하는 건 더 위험”
핸드폰 관람 말릴 수 없지만 “가급적 극장에서”
바다에서 밀수품을 건져 올리는 해녀들의 현란한 수중 액션이 스크린 위에 구현됐다. 영화 '밀수'가 개봉하던 26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은 “먹고 살기 위해 밀수를 시작했던 해녀들이 어떤 욕망 때문에 선을 넘고 자신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는 이야기”라고 신작을 설명하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연출 배경을 전했다.
'밀수'는 류 감독과 그의 아내 강혜정 대표가 함께하는 제작사 외유내강이 기획 개발한 해녀 중심의 ‘군상 활극’이다. 양담배, 청바지, 과자 등 외국산 물품을 자유롭게 반입할 수 없던 70년대를 배경으로 해녀들의 대장 진숙(염정아)과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춘자(김혜수), 자비 없는 밀수왕 권상사(조인성)가 각자의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를 그렸다.
‘밀수’의 대표 볼거리는 바닷속에서 쫓고 쫓기는 해녀들의 액션 신이다. 문어, 성게, 상어 등 바닷속 위협은 물론이고 밀수품을 노리는 세력의 공격까지 더해진다.
류 감독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활극을 벌이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못 봤다”면서 “그렇다면 어디에도 못 본 새로운 장면이 연출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다만 실제 바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제작한 제리 브룩하이머를 만나 조언을 구한 류 감독은 날씨와 안전 문제 때문에 “가급적이면 바다에 안 가는 게 가장 좋다”는 이야기부터 들었다고 한다.
류 감독은 “배가 진행하는 장면, 배우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바다에서 찍었고 나머지는 고양시에 위치한 대형 수조세트에서 촬영했다. 배를 옮겨놓고 포크레인으로 파도를 만들며 찍었다”고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수조 세트 촬영도 어렵긴 매한가지. "처음 해보는 촬영이라 노하우가 없었다"던 류 감독은 "누워있는 수초를 철사로 세워야 하나 위에서 와이어로 잡아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미술팀이 무척 고생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촬영 도중 김혜수 배우가 착용한 수경이 깨지면서 배우의 이마가 찢어지는 등 큰 부상을 입는 위기 상황도 있었다.
“매번 새로운 종류의 작품을 연출한다는 게 두렵긴 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류 감독은 그럼에도 “영화를 열 편 넘게 만드는 동안 성공을 재탕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공식대로 만들면 한두 번은 잘될 수 있겠지만 서서히 침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액션 장면이 많은 영화를 찍었다”는 공통점은 분명하다고 정리했다. ‘밀수’에서는 권상사(조인성)가 춘자(김혜수)를 보호하는 격동적인 액션 시퀀스를 들어 “장르적인 멋과 쾌감이 넘쳐나는 장면”이라면서 “격렬한 상황에서 권상사가 보여주는 품위는 지금은 사라져가는 태도인 ‘기사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전했다.
또 권상사의 액션 시퀀스에서 밴드 산울림의 1978년 곡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흘러나오는 순간 “취향을 떠나 (감흥이) 마구 올라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OTT용 드라마를 연출할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실제 “최고의 스트리밍 서비스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운을 뗀 그는 “90~180분 사이의 무언가를 만든다는 전제하에 최소한 2주 만이라도 극장 상영을 보장해달라고 했다”고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이후 상황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 류 감독은 “그러고는 답이…”라고 말을 줄이며 크게 웃었다.
인터뷰 말미 “'밀수'를 핸드폰으로만큼은 보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부탁한 류 감독은 “세대가 바뀌고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변하는 시점에서 ‘극장에서 안 봤다면 영화를 본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꼰대 같은 짓이겠지만, 되도록이면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잘 구현될 수 있는 곳에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