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 3지대서 만나자”

입력 2023-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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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자들끼리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3지대서 만나자”

국민의힘 출입 기자들은 온종일 회의와 특위를 돌아다녔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라는 허망함이, 더불어민주당 출입 기자들은 몇 달간 이어진 ‘심리적 분당’ 사태에 진절머리가 났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현타(‘현실 자각 타임’을 줄인 말로, 헛된 꿈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가 와서 하는 말인데, 웃음 섞인 대화 속에는 뼈가 있다.

모 정치권 인사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 20대 대선에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을 치렀을 때부터 양당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대급 오리무중 판세’, ‘역대급 초박빙’ 등 다양한 ‘역대급’ 별명이 붙었던 그때 코로나19로 지친 자영업자들을,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을 위로해줄 영웅은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오히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무효 투표수가 30만 표를 넘기며 25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이 역대급 별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0~22일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무당층’은 29%로 집계됐다(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도 그럴 것이 19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거대 양당의 대표들은 상대 진영을 향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성을 질러댔다. 이에 평론가들로부터 “최악”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양당을 향한 피로감에 제3당 신당 창당이 힘을 받는 추세다.

그렇다면 제3지대는 성공할까. 3지대 만남에 수긍하는 나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의문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투표의 힘’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1956년 5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대선에서 유력한 야당 후보인 신익희 후보가 전주로 가는 열차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이승만 독재 정권하에서 변화의 요구로 꿈틀대던 민심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죽은 신익희에 20%가량의 표를 던졌다. ‘신익희 추모표’라 불리는 현실에서는 쓸모없는 무효표였지만, 엄중한 민심의 경고장이었다. 196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이 일어나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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