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좀비기업’ 퇴로 열어야 국가 경제가 산다

입력 2023-05-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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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기업 5곳 중 1곳은 한계기업이란 분석 자료가 어제 공개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2347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17.5%가 한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9.3%에서 곱절 가까이 증가했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미만인 기업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 신세를 3년 이상 못 면하는 기업이 이렇게 많다.

좀비기업이 왜 늘었나. 코로나19 충격, 급격한 금리인상, 국내외 경기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타격을 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코스닥 한계기업은 2016년 9.3%에서 2022년 20.5%로 급증해 코스피 상장사(11.5%)를 크게 웃돌았다.

기업 환경이 어찌 변하느냐에 따라 좀비기업은 앞으로 늘 수도, 줄 수도 있다. 국내 환경은 낙관을 불허한다. 주요 국제기구와 글로벌 투자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전망치를 높이면서도 유독 한국에 대해선 낮추는 방향의 손질을 하고 있다. 국내 좀비기업이 급증할 공산이 크다는 방증이다.

주요 5개국(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에 중국과 한국을 더한 7개국의 한계기업 상황을 수평 비교하면 한국 처지가 최악인 것은 아니다. 2021년 기준으로 따지면 미국(20.9%)과 프랑스(19.2%)가 더 심각하다. 그러나 우리 국가 경제의 주름살이 더 깊게 파인다면 좀비기업 증가세는 확산될 테고, 이는 국가적 고통을 키울 수밖에 없다.

좀비기업의 난립은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경제·금융 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건강한 일자리 생태계 구축도 방해한다. 좀비기업이 창궐하면 멀쩡한 기업마저 한계기업으로 밀려나기 쉽다. 창업의 물결도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한국은행은 2021년 한계기업 10곳 중 1~2곳(15.0%)만이 10년 후 정상기업으로 돌아왔다는 실증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좀비기업의 회생 가능성만 믿고 국가 여력을 총동원해 무작정 지원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경제는 올해 1%대 초반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세수 펑크가 30조 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더 이상 재정 낭비를 일삼고 자원 배분을 엉망으로 꼬이게 해선 안 된다. 이웃 일본은 좀비기업 퇴출을 겁내다가 ‘잃어버린 30년’으로 직행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계기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기업도 숱하다. 옥석을 가려 미래가 있는 기업은 지원하되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퇴로를 열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시기를 잘 잡고 활용해야 국가 경제에 새살이 돋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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