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 격차 ‘사상 최대’…왜 문제인가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3-05-0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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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P/연합뉴스)
미국이 금융시장 불안 여파 속에서 기준금리를 또다시 인상했습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린다고 밝혔는데요. 이로써 연준은 3차례 연속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25%p 인상)을 밟게 됐습니다. 4.75∼5.00%인 미국 기준금리는 5.00∼5.25%로 올랐죠.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성명을 내고 “경제 활동은 1분기에 완만한 속도로 확대됐다. 최근 몇 달간 일자리 증가는 견고했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가계와 기업에 대한 엄격한 신용 상황은 경제활동, 고용,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고, 그 영향의 정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인플레이션 위험에 상당히 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죠..

연준이 지난해 3월 이후 10회 연속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미국 기준금리는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됐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역대 최대인 1.75%p까지 벌어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배경과 국내 금융시장이 받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2501.40)보다 6.58포인트(0.26%) 내린 2494.82에,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843.18)보다 1.05포인트(0.12%) 하락한 842.13에 거래를 시작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38.2원)보다 3.2원 하락한 1335.0원에 출발했다. (뉴시스)
연준, 인플레이션 리스크 경계 중…자본 유출 등 경제 피해 우려도

연준의 이번 금리 인상 배경에는 여전한 인플레이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정례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중반 이후 다소 완화됐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전체적으로 물가가 안정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죠.

최근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잇따른 은행 파산으로 금융 불안이 이어지고 있는데 대해 파월 의장은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고 탄력적”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JP모건 체이스에 인수된 데에는 “이제 모두 해결됐다”며 낙관적인 태도를 드러냈죠. 은행 파산 사태가 연준의 금리 인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의 이번 금리 인상으로 한국 금리와의 격차는 또 벌어지게 됐습니다. 가뜩이나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3.50%)한 상황입니다. 한·미간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면서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자금이 한국을 이탈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통상 금리 폭이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미국 금리가 높은데, 굳이 한국에 달러를 저축할 이유가 있냐는 거죠.

문제는 이전부터 자본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3월 중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17억3000만 달러가 순유출됐습니다. 순유출은 한국 주식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들어온 자금보다 많았다는 걸 나타내는데요. 순유출액은 당시 원·달러 환율(1301.9원) 기준으로 약 2조2523억 원 규모입니다.

외국인 국내 주식투자자금은 지난해 10월 이후 올해 2월까지 5개월 연속 순유입을 기록했으나, 6개월 만에 순유출로 전환했습니다. 잇따른 은행 파산 등으로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돼 주식 투자 자금이 나간 겁니다.

외국인 국내 채권투자자금은 지난해 12월(27억3000만 달러)부터 올해 1월(52억9000만 달러)까지 대규모 순유출됐습니다. 이는 한은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9년 4월 이후 역대 최대 규모 순유출이었습니다. 2월에도 5억2000만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죠. 다만 한은 측은 “과거 1999년 이후 한미 간 금리 역전기에도 채권자금은 대체로 순유입된 바 있다”며 “더욱이 최근 채권자금 유출을 주도하고 있는 주체는 공공부문인데, 이들은 대체로 중장기 투자자로서 단기간의 금리차에 덜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원화 가치도 하락할 위험이 커집니다. 문제는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경우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이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컨퍼런스 콜로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연준, 추가 긴축 가능성 문구는 지웠지만…고심 깊어지는 한국은행

시장에서는 이번 금리 인상이 마지막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5월 FOMC 성명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기 위해 추가적인 정책 강화(금리 인상)가 적절할 수 있는 정도를 결정할 것’이라며 ‘통화 정책이 경제활동 및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바로 직전에 발표한 3월 성명의 ‘추가적인 정책 확인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문구는 빠졌습니다.

CNBC 등 다수의 외신은 중앙은행이 계속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신호로 여겼던 핵심 문구가 삭제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향후 금리 동결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도 해석된다는 의견인데요.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 중단에 대해 “이에 대한 결정이 이날 회의선 내려지지 않았다”면서도 “성명서의 변화는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다만, 동결 관련 질문에는 경제지표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답변을 되풀이했고 오히려 “필요하다면 더 강도 높은 긴축에 나설 준비도 돼 있다”며 긴축 경계감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올해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죠.

한은은 이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합니다. 초유의 금리 격차로 두 번 연속 금리를 동결했던 한은의 고심도 깊어지게 됐는데요. 이창용 한은 총재는 수차례 “한미 금리차에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바 있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과 국제자금 유출 압박이 큰 부담인 건 사실이라 추가 금리 인상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연준 발표 이후 환율을 살펴보면, 4일(한국시간) 기준 원·달러 환율은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고, 전날 1340원을 돌파했던 것에 비해 이날 오후 1시 15분 기준 1324원으로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4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도 266억8000만 달러로 전월 말 대비 6억1000만 달러 증가하며 두 달 연속 늘었습니다. 또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까지 내려온 데다, 무엇보다 0%에 가까운 분기 성장률이 이어지고 있어 금리 추가 인상이 경기 하강과 금융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죠.

이에 환율이나 외국인 자금 동향에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시장에서는 단순히 미국과의 금리 차만 고려해 금리를 인상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다만 한은의 금통위 통화정책결정 회의까지 남은 3주간 한미 금리 차로 인한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대규모 자금이 유출될 경우, 한은 역시 0.25%p 금리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앞으로 미 연준, 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변화 및 금융안정 상황의 전개 양상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관련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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