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의 웃픈 일화가 있다. 당시 우리 기업이 개발한 컬러 TV가 전시돼 있었는데, 전원이 꺼져있었다.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화질 상태를 보여줘야 할 TV 모델 중 하나가 꺼져있어 의아했다. 해당 제품은 미국 시장 수출 시 필요한 전자파 시험 등 해외인증을 획득하지 못했고, 전자파 발생을 우려해 전원 버튼을 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1970년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전신인 한국정밀기기센터(FIC) 이춘화 소장이 겪은 사례로, 수출 시에 해외인증 획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동안 KTL은, 1966년 정부와 유네스코의 공동사업으로 설립된 후 국내기업들의 수출증대와 품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 유수의 시험인증기관과 기술 협정을 맺어왔다. 반세기가 흐른 오늘에도 세계 각국이 적용하고 있는 기술규제 정보제공과 무역기술장벽(TBT) 컨설팅, 신제품 시험평가 그리고 국제표준화 활동까지 수출활로를 뒷받침하는 KTL 본연의 임무에 대한 중요성은 한치도 변함이 없다.
먼저, 국내 최대 규모로 확대된 55개국 160여 개의 상호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출 인증을 신속, 편리하게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주요 수출국인 북미 시장 진출 지원을 위해 가전기기 및 정보조명 분야 UL 인증 시험소로 발 빠르게 지정받는 등 원스톱 서비스 제공에 힘쓰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기기, 사이버보안 및 자율주행 통신 등 미래산업 분야의 수출 지원 확대를 위한 협력체계 구축도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국가 산업의 흐름에 발맞춰 수요가 증대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기 기업 지원을 위해 일본 차데모(CHAdeMO) 협회로부터 국제 인증기관으로 지정됐고, 프랑스(EV Ready Mark), 브라질, 베트남 및 멕시코 등에도 수출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고 있다.
국가별 정확하고 다양한 규제정보 제공과 무역기술장벽 대응 지원 체계도 한층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57년간 쌓아온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인증 정보시스템(www.certinfo.kr)을 구축했고, 150여 개국 450여 개의 인증 정보를 우리 기업이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 KTL은 아시아 인증기관 네트워크 포럼(ANF) 의장국으로 선임돼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 흐름에 따라 복잡, 정교해지는 우리 기업 해외 판로 개척 지원을 위한 날개를 달았다.
ANF는 아시아 내 시험인증기관 간 네트워크로 시험인증 상호인정 촉진, 수출기업 지원 및 역내 교역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2000년에 설립한 협의체이다. KTL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무역 국가인 일본, 싱가포르, 중국, 대만, 베트남 시험인증기관 총 6곳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앞으로 ANF 간 시험성적서 인정 체계를 강화해 해외인증을 국내에서 신속·편리하게 획득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의 인증획득 비용과 기간 단축의 실질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다. 최근 KTL은 ANF 회원기관인 베트남 품질보증시험원과 20년간 쌓아온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전기안전, 전자파 시험성적서 상호 인정에 이어 공장심사 권한까지 인정받아 원스톱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핸드 드라이기 제조기업인 A사는 베트남 수출에 필요한 안전 시험과 공장심사를 KTL에서 한 번에 진행해 시간·비용 절감은 물론 연간 약 3000대 규모의 수출까지 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ANF는 그간 총 37회 기술 교류를 통해 수출 활성화와 시험인증산업 발전에 협업해왔다. 앞으로도 미래모빌리티, 인공지능 관련 산업 등 기술 교류를 강화해 무역기술장벽 대응력 향상과 국제표준화 활동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또한 ANF 회원국을 인도네시아, 태국,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신흥 수출국으로 확장도 추진한다.
과거 1960년대, 국가 공업화와 수출입국(輸出立國)을 표방하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던 대한민국은 어느덧 세계 6위 수출국으로 우뚝 솟았다.
올해로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은 창립 57주년(4.13)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국가 미래 산업의 발전과 수출 길을 넓히기 위한 공공 시험인증기관의 소명에 충실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시험인증산업의 역군으로서, 기술 강국의 굳건함과 수출 플러스 정책을 뒷받침하고 우리 기업들의 수출확장에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