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한국도 미국도, 통화량 감소의 이면

입력 2023-03-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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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택 경제칼럼니스트

금리를 올리니 통화량이 줄고 있다. 경기예측에 유용한 지표인 통화량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줄고 있다. 통화량의 감소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타날 실물경제의 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의 통화량(M2) 평균잔액은 3779조 원으로, 이는 11월보다 6조3000억 원, 0.2% 줄어든 수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화량은 지난해 3월에 일시적으로 0.1% 감소한 이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무엇보다도 M2 구성요소 중 요구불 예금과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통화량은 2022년 12월에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4423억 달러) 감소했다. 2021년 여름 이후 요구불 예금의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통화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타 유동성 예금도 2022년 8월부터 감소하고 있다. 특히 통화량의 연간 증가율은 1960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였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70년대 경기침체 등 극히 이례적인 경우에만 통화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통화량은 왜 감소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통화를 공급하는 주요 원천인 은행 대출을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초부터 1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기존 대출 상환액이 신규 대출액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지난해 7월 이후 7개월 만에 감소로 전환했고, 신용대출 잔액도 2021년 12월 이후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기존 대출 상환이 늘어나고 기업의 투자 수요도 감소함으로써 신규 대출이 줄어든 영향이다. 한국에선 대출 감소가 머니무브와 함께 통화량을 감소시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미국의 경우 은행 대출은 2022년 8월 이후 조금씩 둔화되고 있지만 통화량 감소의 주요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은행의 총자산은 전년 대비 3990억 달러나 증가했다. 은행 자산은 대출해줄 여력을 의미하는데, 은행 자산이 증가했는데도 통화량이 오히려 감소한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사실 통화량이 감소하는 데는 주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정책 때문이다.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금융시장에서는 소위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은행은 고객에게 이전보다 높은 고금리 상품을 제공하는데, 은행은 고객의 요구불 예금과 정기예금을 고금리를 보장하는 은행채에 투자한다. 은행은 채권투자를 통해 얻은 높은 이자수익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은행채는 통화량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머니무브 과정에서 통화량은 감소하게 된다.

둘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양적 긴축을 통해 통화 공급을 줄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연준은 대차대조표에 있는 채권의 이자나 만기에 상환된 원금을 더 이상 자본시장에 재투자하지 않는다. 이렇게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지급한 원리금은 상업은행 부문의 예금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량, 즉 통화량을 감소시킨다.

셋째, 최근 연준은 역레포(Reverse Repo) 거래의 참가자를 일부 선별된 상업은행에서 헤지펀드, 연기금 또는 패밀리오피스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이들이 보유하던 예금을 중앙은행으로 흡수하고자 한다. 역레포 거래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채권을 사들였던 연준이 채권을 금융회사나 머니마켓펀드(MMF)에 팔아서 일시적으로 시중에 많이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렇듯 역레포 거래가 많아지게 되면 자산매입의 축소를 통한 유동성 감소 효과를 앞당길 수 있다.

2022년 중반 이후 미국 은행의 대출 기준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눈에 띄게 강화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대출은 더욱 감소하게 되고 은행 부문의 통화 창출은 줄어들고 통화 공급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연준의 통화긴축 정책은 통화량 감소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경제의 활력을 줄이는 부작용도 있다. 다만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연준의 과도한 긴축정책이 경기를 침체에 빠트려 경착륙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투자자는 향후 경기의 경착륙 또는 연착륙 가능성에 대한 선행지표로서 통화량의 추이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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