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유 수송 ‘그림자 선단’ 활개...에너지 시장 불안 증폭

입력 2023-03-02 11:30수정 2023-03-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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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노보로시스크항에 유조선이 정박해 있다. 노보로시스크/AP연합뉴스
서방의 대러 제재 이후 러시아 원유를 수송하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CNN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대러 원유 수입을 금지했다. 지난달부터는 가격상한제도 도입, 배럴당 60달러가 넘는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해운사는 G7·EU·호주의 보험 및 금융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그 여파로 거래가 까다로워지자 일부 서방 선박 업체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송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정체가 불분명한 업체들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유럽에서 배를 사들이거나 폐선박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업계에 따르면 ‘그림자 선단’ 규모는 약 600대로 불어났다. 전 세계 대형 유조선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림자 선단은 국제사회의 주류인 미국, 유럽 등 서방국의 정유사·보험업계와는 거래하지 않고, 국제 제재 대상국인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거래하는 유조선들을 말한다. 이들은 일반 해상 보험을 이용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 낮은 중고 유조선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위험 부담을 줄인다. 선박명을 페인트로 지우고 지분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선박 실소유주를 감추기도 한다.

서방의 대러 제재 이후 유럽과 거래가 끊긴 러시아가 중국, 인도로 수출 물량을 대폭 늘리면서 ‘그림자 선단’이 대폭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원유를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통상 4배 이상 운송 능력이 더 필요하다. 중국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하루 평균 190만 배럴로 2021년보다 19% 증가했다. 인도는 하루 평균 90만 배럴로 무려 800% 급증했다. 에너지 정보 제공업체인 케이플러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중국 및 인도 석유 수출은 유럽의 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 발표 후인 1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로 원유 수출을 늘린 가운데 유조선 수요가 급증하자 ‘그림자 선단’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석유 업체 관계자는 CNN에 매달 약 25~35척의 선박이 그림자 선단에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비영리 단체 글로벌위트니스 분석 결과 2022년 2월 말 이후 올해 1월까지 유조선 거래의 약 25%에서 구매자가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플러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매튜 라이트는 러시아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을 ‘그레이’와 ‘블랙’으로 분류했다. 그레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업체들이 중동 및 아시아 회사에 판매한 선박을 일컫는다. 블랙은 이란과 베네수엘라 원유를 수송하며 서방 제재를 피하는 데 베테랑인 유조선들로, 최근 러시아 원유로 갈아타고 있다는 설명이다.

리스타드에너지의 선임 애널리스트 자니브 샤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산 석유를 전 세계로 수송해온 그림자 선단이 활동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림자 선단 증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극적인 변화를 암시한다. 수십년 지속된 에너지 거래 방식이 재구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리차드 매튜 EA깁슨 수석 연구원은 “러시아와 거래를 아예 하지 않는 선박과 러시아 원유만 거래하는 선박, 둘로 나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자 선단 증가는 부작용 우려를 키운다. 라이트는 “유조선 시장 운영 방식의 비효율성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서방의 제재 효과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원유가 얼마에 판매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러시아 원유가 주요 항구에서 공식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전도 문제다. 그림자 선단의 유조선은 15년 이상된 경우가 많다. 매튜 연구원은 “제대로 유지 관리되지 않는 선박들”이라면서 “중대한 유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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