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탈중국] ③ 미중 ‘반도체 전쟁’에 등 터지는 한국

입력 2022-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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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지원법에 채찍 수준 ‘가드레일’ 조항 숨겨
업체당 최대 30억 달러 보조금 받지만
10년간 중국에 시설 투자 하지 못해
미국, 대만 7조원 반도체 공장 가로채는 등 ‘뒤통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인텔 신규 반도체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뉴앨버니/AP뉴시스

미국이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후 첫 외교정책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동맹국에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올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고 첨단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리기 위한 지원책을 담은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하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했고, 한국을 비롯한 미국 동맹국들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반도체 지원법은 관련 기업들에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당근책을 제시하는 동시에 채찍 수준의 ‘가드레일’ 조항을 숨겨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향후 5년간 총 2800억 달러(약 366조 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조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늘어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미국의 해외 의존도를 낮춰 공급망 혼란을 완화하는 것이 이 법안의 목표다.

미국은 팹리스(반도체 설계)를 중심으로 여전히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입지는 과거에 비해 매우 좁아졌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미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지난 1990년 37%에서 지난해 12%까지 밀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의식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맨 앞단에 ‘반도체’를 내세웠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공급망 재정비에 나섰고,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170억 달러, SK그룹은 290억 달러를 각각 미국에 신규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의 ‘기브 앤 테이크’는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에 발맞춰 투자를 선언한 우리 기업들은 사실상 이번 반도체 지원법 수혜 테두리에 들어가지 못할 위험에 놓였다.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반도체기업들이 제조 시설을 지으면 업체당 최대 3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게 되는데, 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10년간 중국 같은 우려 국가에 반도체 시설 투자를 사실상 하지 못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보조금 대상 기업은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미만 미세공정에 대한 중국 내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약정을 미국 상무부 장관과 맺게 될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중국 투자 제한 범위도 미 상무부 장관이 정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려와 반발이 크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달 9일 오하이오주 인텔 신규 반도체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우리는 세금을 지원받는 기업들이 공급망을 훼손하는 중국에 투자하지 않도록 분명히 할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연방 자금을 회수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세부적인 지침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러한 규정이 굳혀지게 되면 사실상 우리 기업들은 세제 혜택을 포기하고 중국을 택하든지, 미국의 혜택을 받는 대신 중국을 포기해야 하는지 ‘양자택일’에 몰리게 된다.

최근에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에 신규 공장을 검토하던 대만의 반도체 회사이자 세계 3위 웨이퍼 제조사인 글로벌웨이퍼스를 설득해 미국에 투자를 유치한 사실을 업무적 성과로 밝혀, 동맹국보다는 반도체 패권 확보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웨이퍼스가 한국에 지으려던 공장 규모는 약 7조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며 동맹국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입법과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등 동맹들과 연합해 미국 정부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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