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한 피보험자의 아들이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가 이를 거부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피보험자의 아들 A 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피보험자인 B 씨는 2017년 9월 원주의 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를 피하다가 중앙 분리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B 씨는 병원에 옮겨진 뒤 뇌진탕 등으로 10일간 입원했다.
이후 B 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으며 치료를 받아왔다. 입원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비오는 날에 몸을 떨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B 씨의 남편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B 씨는 남편을 간호하다가 병원 화장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 씨와 보험사가 맺은 계약에는 ‘교통사고로 발생한 상해’로 사망한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약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보험사는 ‘우울증은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다.
결국 A 씨는 보험사에 B 씨에 대한 교통상해사망 보험금 1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우울장애를 겪던 B 씨가 남편의 교통사고로 외상이 자극됐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반면, 항소심은 1심의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패소 판단을 내렸다. 교통사고로 우울증이 생기긴 했지만 사망에 이르게 된 건 A 씨 자유 의지에 따른 행동이지 우울증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이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B 씨가 교통사고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을 앓게 됐고 완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의 교통사고나 비 내리는 날씨 등 사고 당일을 떠오르게 하는 상황을 겪게 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B 씨가 사고 이전에는 정신질환을 겪거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의 직접 결과로 사망했다고 추단하기 충분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