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사당국이 버려진 커피잔을 이용해 46년 전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붙잡았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펜실베이니아주 랭카스터카운티 지방검찰청에 따르면 1975년 12월5일 저녁 미 펜실베이니아주 매너타운십의 한 아파트에서 19세 여성 린디 수 비클러가 흉기에 19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마을의 한 꽃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비클러는 이날 남편 직장과 은행, 슈퍼마켓을 들른 뒤 귀가해 집에 혼자 있던 상태였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경찰 등 수사당국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면접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 중 수십 명이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혈액형이나 DNA 등 증거에 의해 모두 혐의를 벗었다.
사건 발생 22년이 1997년 수사관들은 한 DNA 실험실에 비클러가 피살 당시 입었던 옷을 보내 용의자의 정액을 확인하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운영하는 국가 DNA 데이터베이스인 '코디스'에 업로드했다.
하지만 당시 200만 명의 자료만을 보유했던 코디스에서 일치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DNA 계보학이었다.
버지니아주 소재 파라본 나노랩에서 일하던 유전자 계보학자 시시 무어는 2020년 12월 용의자의 DNA를 분석해 용의자의 조상이 이탈리아 가스페리나 출신이고, 가족 구성원 중 다수가 이탈리아에서 최근 이주한 것으로 판단했다.
무어는 사건 당시 근처에 거주했던 이탈리아계 주민 2300명 중 조상이 가스페리나에 살았던 사람들을 추린 뒤 각종 자료를 활용해 당시 피해자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거주했던 데이비드 시노폴리(68)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후 시노폴리를 감시하던 수사당국은 2월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서 시노폴리가 마신 뒤 쓰레기통에 버린 커피잔을 수거해 DNA를 추출,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국은 18일 시노폴리를 체포하고 비클러의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시노폴리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헤더 애덤스 랭카스터카운티 지방검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린디 수 비클러를 위해 끝없이 정의를 추구한 것"이라면서 "법 집행 당국은 비클러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성폭력처벌법과 2015년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 개정으로 살인·강간살인 사건 공소시효가 폐지됨에 따라 경찰은 살인 미제사건 수사기록이 훼손·멸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수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문서화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