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당신은 속고 있다...인플레이션의 그늘 ‘슈링크플레이션’

입력 2022-07-12 16:26수정 2022-07-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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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코의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 (AP/연합뉴스)
펩시코의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입니다. 두 개가 똑같아 보이나요?

같은 게토레이지만 하나는 뚱뚱하고, 다른 하나는 날씬한 모습인데요. 펩시코 측에서 용기를 왼쪽에서 오른쪽 모양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모양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용량도 32온스(약 807g)에서 28온스(약 793g)로 줄었는데요. 모양도 용량도 줄었지만 가격은 그대로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가격을 안 올리는 대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현상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해 만든 단어입니다.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들이 구매를 주저하자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조용히 내용물과 포장 크기를 줄이고 있는 건데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의 가격이 올라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숨겨진 ‘인플레이션’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美 물가 상승률 40년 만에 최고치...슈링크플레이션 가속화

▲(AP/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화장지 제조업체인 크리넥스는 작은 상자 하나에 들어가는 티슈의 양을 줄였습니다. 원래 65장의 티슈가 들어갔지만 이제는 60장만 들어갑니다. 미국인이 즐겨 찾는 ‘초바니 플립스’ 요거트도 한 개 용량이 157mL에서 133mL로 줄었고, 영국에서 네슬레의 ‘아제라 아메리카노’ 커피 한 캔은 100mL에서 90mL로 줄었습니다.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무시무시할 정도 입니다. 지난 5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8.6%로 4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는데요. 6월의 물가상승률은 9%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과 기름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데요. 생산비 증가에 맞닥뜨린 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신 용량을 줄이는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을 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생산비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 이를 가격에 반영하는 것은 부담입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매우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기 때문에 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신 몰래 양을 줄이는 ‘꼼수’를 쓰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원가 상승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입니다.

이같은 기업의 ‘꼼수’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큰 이익 창출로 이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게토레이 등 음료의 용량을 줄인 펩시코의 경우 영업이익이 지난해 11% 증가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128% 늘었습니다. 불경기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 추가 이윤을 추구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한국도 피할 수 없다...물가 급등에 고육지책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0%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치솟는 물가에 한국에서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점차 확산하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기본 반찬의 수를 줄이거나, 고깃집에서 상추 대신 다른 채소를 제공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건데요. 자영업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상추 가격이 너무 올라서 배추로 대체하고 있다”, “포장에 상추 10장 주던 걸 깻잎 5장, 상추 5장으로 바꿀지 고민이다”는 등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가격 포털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적상추의 가격은 100g당 3025원으로 1년 전 1106원에서 3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불과 2주 전 1624원이었던 것에 비해서도 2배 가까이 급등한 가격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은 더 확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트릴 위험이 있습니다. 당장 가격 인상보다 저항감은 적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앞서 2014년 한국에서는 ‘질소 과자’ 논란이 일었는데요. 질소 과자는 포장지 크기에 비해 내용물이 적은 과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당시 과자 업계는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질소로 원가를 낮추고 가격을 지켰지만, 소비자들은 이러한 기업의 행태에 분노했습니다. 당시 질소 과자에 불만을 품은 대학생들이 국산 과자 봉지를 묶어 만든 뗏목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죠.

전문가들은 7월과 8월에 6월보다 더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하는데요. 치솟는 물가에 슈링크플레이션까지 본격화하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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