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감동을 활자로”…감독과 배우의 책들

입력 2022-07-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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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조현호 기자 hyunho@)

박찬욱이 원래 뛰어난 영화평론가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박찬욱의 글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관능적이고 멋지다. 책도 두 권이나 냈는데, 하나는 ‘박찬욱의 오마주’고, 다른 하나는 ‘박찬욱의 몽타주’다. 전자는 그가 1994년에 출간한 ‘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이라는 영화평론집의 증보판이며, 후자는 그의 칼럼, 에세이, 제작일지 등이 묶인 산문집이다. 두 책은 올해 3월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리커버판으로 출간됐다.

감독과 배우의 글은 3D 이미지처럼 입체적이다. 주로 영상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글에서 특유의 영상미가 느껴지는 것이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배우 모지민의 책도 그렇다. 그는 과거 산문과 운문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 책이 바로 지난 4월에 출간된 ‘털 난 물고기 모어’다.

황인찬 시인은 이 책에 대해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글쓰기”라며 “이렇게나 쓸쓸하고 집요한 글을, 이토록 악랄하고 처연한 글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죽음과 사랑과 삶과 증오가 드글대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때로는 숨 막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투명한 언어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모지민의 책을 보면, 마침표를 찍지 않는 등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는 식의 문체가 돋보인다. 이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그가 기존의 가치와 부조리한 시스템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서 일종의 전복적 성격의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무대”처럼 보이는데, 뛰어난 무용수이기도 한 그의 음악적 리듬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최근 몇 년간 ‘벌새’의 김보라, ‘김군’의 강상우 등 젊은 감독들은 영화의 성공 이후 그 뒷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표해 큰 관심을 받았다. 단순한 영화 각본집이 아니라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제작 과정 그리고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단상 등이 상세히 담긴 에세이 형식의 책이다.

가수 이랑 역시 영화 연출뿐만 아니라 노래, 글쓰기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도 연기를 비롯해 노래,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가 지난해 7월 출간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 대해 오혜진 문학평론가는 “온갖 장르와 매체와 기법을 우습다는 듯 갖고 노는 이반지하의 유일무이한 예술론”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한 출판 관계자는 “박정민, 최희서, 전소민 등도 글 잘 쓰는 배우로 유명하다. 최근에 이런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가 크다. 바로 ‘전방위적 예술가’의 탄생”이라며 “이런 현상은 예술에서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교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도 맥이 닿아있다. 이런 현상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젊은 감독과 배우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는데, 쉽게 말하면 이제 하나만 하는 시대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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