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저금리 기조에 글로벌 머니 썰물
리라화 가치 1년새 48% 폭락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튀르키예 통계청은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78.62%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1998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는 4.95% 올랐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에너지 가격이 151.3%나 치솟았고, 식음료비 상승률 또한 93.93%에 달했다. 교통비는 전년 대비 123.37% 뛰었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튀르키예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혼란, 에너지·식품 가격 급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유독 튀르키예만 80%에 달하는 살인적인 물가에 직면하게 된 배경에는 경제학 이론과 배치되는 통화정책이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기준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는 경제학 상식을 거부하고, 대신 중앙은행에 금리를 인플레이션 수준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넉 달 연속 금리를 인하했고 이후 현 기준금리(14%)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를 낮추면 생산과 수출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것이라는 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에 대응해 발 빠르게 금리 인상에 나선 것과 정반대 움직임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지시에 반기를 드는 중앙은행 총재를 내치면서까지 저금리 기조를 고집했다. CNBC에 따르면 2021년 봄까지 지난 2년 동안 중앙은행을 거친 총재는 4명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주 최저임금 30% 인상안을 발표해 인플레이션 추가 상승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이번 30% 인상안은 최저임금을 50% 올린 지 불과 6개월 만에 추가로 올리는 셈이다. 경제 혼란으로 지지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표심을 의식해 최저임금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르도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안은 식량 가격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백만 빈곤층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서 내년 초 인플레이션이 ‘합리적인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살인적 물가는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튀르키예 물가상승률이 연말까지 70%대를, 이후 최소 내년 중반까지는 20%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튀르키예 연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65%에서 75%로 상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