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40여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상승률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스텝’ 우려가 커지자 공포에 질린 개미들이 투자 자금을 속속 거둬들이는 모습이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9일 기준 56조973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공모주 최대어로 광풍을 불러일으켰던 LG에너지솔루션 청약에 자금이 몰렸던 지난 1월 20일(53조8056억 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준비 중인 자금이 쪼그라든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두거나 주식 매매 이후 보관 중인 자금을 말한다. 특히 증시 진입을 목전에 둔 대기성 자금인 만큼 주식 시장의 투심을 드러내는 지표로 여겨진다.
증시 활황기를 맞았던 지난해 투자자예탁금이 매월말을 기준으로 최저 58조 원에서 최대 70조 원대를 기록하던 모습과 대조된다. 올해 들어서도 투자자예탁금은 매월말 1월 70조3447억 원, 2월 63조4254억 원, 3월 63조2826억 원, 4월 61조4062억 원을 기록했으나, 지난 5월 57조5671억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60조 원대를 하회했다.
올해 내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를 떠받쳤던 동학 개미들의 투자 기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17조5736억 원어치를 사들였던 개인투자자는 지난 5월 1조33억 원을 팔아치우면서 올해 처음으로 순매도를 기록했다.
개미 투자자들의 올해 코스피 순매수 규모도 지난 10일 기준 19조664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0조9484억 원) 대비 38.5% 수준에 그쳤다.
주식형 펀드에서도 자금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기준 국내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43조2583억 원으로 최근 1개월 사이 3.1%(1조4155억 원) 줄었다. 특히 설정액이 연초대비 7208억 원이 늘어난 점 감안하면 최근 1주일 사이 1조3226억 원이 감소하는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근래에 이탈세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별로 보면 주가 지수가 연동되는 인덱스주식 펀드에서 1조4357억 원이 감소, 유출세가 컸다.
미국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던 서학개미들도 투자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올해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지난 9일 기준 573억5379만달러(73조6078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2억3760만달러(65조7685억 원) 대비 11.9%(61억1619만달러) 줄었다. 결제금액을 기준으로는 순매수 규모가 118억6116만달러(15조2297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3억9210만달러(15조9201억 원) 대비 4.2%(5억3094만달러)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투자 규모도 감소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외증권투자 금액은 8107억달러로 전분기 대비 2.96%(240억달러)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내국인 투자자들의 해외 증권투자가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20년 1분기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이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팬데믹 시대 증시 수급의 주축이었던 개인의 매매가 둔화되고 있다”며 “금리 상승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높아지면서 여유 자금을 활용한 투자 보다는 부채 상환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서 개인의 주식 시장 유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